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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5 조회수2,229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9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 신심 미사

제1독서 2역대 24,18-22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18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제2독서 로마 5,1-5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 마태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차가운 물속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사인은 무엇일까요?

아마 저체온증 때문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95% 이상이

 공포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이 말에 크게 공감을 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이런 공포를

예전에 래프팅

(고무보트를 타고 계곡의 급류를 헤쳐 나가는 레포츠)

을 하다가 느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래프팅을 가서

고무보트를 타고 계곡을 내려오는데

글쎄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혼자서 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어디 가서 수영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 정도의 수영 실력을

가지고 있는 저입니다. 또한 보트에는

안전요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 빠져서 빠른 물의 속도에

떠내려가면서 느낀 것은 ‘공포’였습니다.
갑자기 물에 빠지게 되니까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냥

허우적거리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물도 꽤 마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억지로 수영을

하지 않고 그냥 빠른 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고 하지요.

알면서도 당황하게 되면서

공포를 느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공포는 잘 하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절망감을

 심어주어서 희망을 잃게

만드는 것이 공포입니다.

희망의 주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통해서만 모든 공포에서

벗어나 참 기쁨의 삶, 참 행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를 봉헌합니다.

신부님의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중국에서 어렵게 사제서품을 받고서

한국에 돌아왔지만 1년도 안 되어

체포되어 문초를 받고 1846년

 9월 16일에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십니다. 젊은 나이였고 사제로서

연륜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얼마나 두려우셨을까요? 더군다나

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하고서

 사제서품을 받았는데, 1년도 안 되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억울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의연하게 순교하셨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우리를 두렵게 하고 공포심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유혹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때 희망의 주님을 떠올리면서

주님의 구원 약속을 마음에 담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유혹보다는 주님의

말씀이 훨씬 더 힘이 있으며 기쁨의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지혜로운 자의 목표는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초상화)


다 필요한 시간.

가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옛날에 살았던

경기도 안중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때의 기억들이 많은지 부모님을

 모시고서 함께 안중을

 찾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경기도 안중에서

살았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많은 기억이

있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단 하나의 기억도 없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태어난 곳으로,

 갓난아기 때를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제 기억에 없는 경기도 안중에서의

시간이 제게 필요 없는 시간일까요?

기억도 하지 못하고 무엇 하나 스스로

한 것이 없는 시간이니 허투루 산 것일까요?

아닙니다.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고,

기억에 없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 역시

지금의 제가 있는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또 기억에 없다고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취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종종 “잘못 살았어. 헛살았어.

제발 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라는

말로 자신의 삶을 탓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간 역시

 나를 만들어주는 필요한 시간이었고,

 앞으로 더 나은 시간을 만들 수 있는

 반드시 있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지배하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더욱 더 희망의

주님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시간이 감사할 수 있으며

희망을 둘 수 있는 시간입니다.

(김대건 신부님 동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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