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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6 조회수2,244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9년 7월 6일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제1독서 창세 27,1-5.15-29

1 이사악은 늙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큰아들 에사우를 불러 그에게

 “내 아들아!” 하고 말하였다.

에사우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 그가 말하였다.
“네가 보다시피 나는 이제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3 그러니 이제 사냥할 때 쓰는

화살 통과 활을 메고 들로 나가,

나를 위해 사냥을 해 오너라.

4 그런 다음 내가 좋아하는 대로

별미를 만들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그것을 먹고, 내가 죽기 전에

너에게 축복하겠다.”
5 레베카는 이사악이 아들

에사우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

그래서 에사우가 사냥하러 들로 나가자,

15 레베카는 자기가 집에 가지고 있던

큰아들 에사우의 옷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을 꺼내어,

작은아들 야곱에게 입혔다.

16 그리고 그 새끼 염소의

가죽을 그의 손과 매끈한

목둘레에 입힌 다음,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빵을

아들 야곱의 손에 들려 주었다.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그가 “나 여기 있다. 아들아,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르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니 일어나 앉으셔서

 제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축복해 주십시오.”
20 그래서 이사악이 아들에게

“내 아들아, 어떻게 이처럼

빨리 찾을 수가 있었더냐?”

하고 묻자, 그가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일이

 잘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이사악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아, 가까이 오너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사우인지

아닌지 내가 만져 보아야겠다.”

22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에게

가까이 가자, 이사악이 그를

만져 보고 말하였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사우의 손이로구나.”
23 그는 야곱의 손에 그의

 형 에사우의 손처럼 털이

많았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축복해 주기로 하였다.

 24 이사악이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사우냐?” 하고

다져 묻자, 그가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러자 이사악이 말하였다.

“그것을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너에게 축복해 주겠다.” 야곱이

아버지에게 그것을 가져다 드리니

그가 먹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가져다 드리니 그가 마셨다.

26 그런 다음 아버지 이사악이

그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입 맞춰 다오.”
27 그가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자,

이사악은 그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였다.

“보아라, 내 아들의 냄새는 주님께서

복을 내리신 들의 냄새 같구나.
28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리라.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
29 뭇 민족이 너를 섬기고,

뭇 겨레가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너는 네 형제들의 지배자가 되고,

네 어머니의 자식들은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에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

복음 마태 9,14-17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요즘에 음악을 조금씩 듣고 있습니다.

사실 한동안 음악을 잘 듣지 않고

 살았습니다. 음악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요즘 음악을 듣다보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제 삶이 너무 삭막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 우연히 차 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으면서 요즘에는

 종종 음악을 듣게 되었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을 많이 들을까요?

제가 10대, 20대 때에 들었던 요즘

소위 7080이라고 불리는 노래들을

주로 듣게 되더군요. 그때의 노래들이

훨씬 더 좋은 것 같고, 노래 가사도

제 귀에 쏙쏙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 노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노래의 리듬과 가사

전달 방식은 제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는 저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더군요.

10~20대 때가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하기 때문에 이때 들었던 노래,

영상 등이 편하게 다가오고

또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즘 노래를 모른다고 해서 옛날 사람

취급을 하면서 함께 할 수 없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또한 노래 같지

않은 노래를 좋아한다면 요즘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반대할 것도 아닙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란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장만이 맞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생각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만을

 찾게 됩니다. 차이를 인정하게 될 때

 함께 할 수 있는 이유 역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단식 논쟁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일까요? 당시에 열심한

종교지도자들은 모두 단식을 했었지요.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역시 당연히 단식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식의 본래 이유를

모르고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단식은 주님을 기다리기 위한 회개와

 속죄의 표시로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주님이 함께 하고 있으니

어떻습니까? 오히려 기뻐하며 즐겨야

하는 혼인잔치와 같은 때라는 것입니다.

혼인잔치에 가서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단식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혼인잔치의 주인공에게

큰 무례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틀렸다고

규정짓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집중해보면 어떨까요?

보다 더 옳은 판단으로 함께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 문제되는 세대 간의 갈등도

충분히 해결되지 않을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칭찬은 평범한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다.

(막심 고리키)

(새 술은 새 부대에)


좋은 점을 바라봅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모든 것을

잘해야 우수한 인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잘 따져보면 결국 모두가

더 나은 사람과

단순히 비슷해지려고만

하는 교육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지요.
여러분의 자녀가 국어 100점,

 영어 90점, 수학 70점을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과목에 집중하라고

아이에게 말하겠습니까?

대부분이 수학 점수가 제일

낮으니 수학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못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잘 하는 것은 조금의 노력만 더 기울이면

더 잘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못하는 것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 점이 분명히 맞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낮은 점수를 높여서

다른 이들과 비슷하게 맞추려고만

한다는 것이지요.
이 모습은 내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의 좋은 점들은 보지 못하고

나쁜 점만 바라보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나쁜 점을 고치지 않으면

상종하지 못할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좋은 점을 바라보는 우리,

 그래서 잘 하는 것이 더욱 더

부각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요?

(갑곶성지에 봉헌된 초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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