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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 스테파노, SDB(언젠가 주님께서 우리의 굳어진 혀를 풀어주실 것입니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9 조회수1,617 추천수7 반대(0) 신고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언젠가 주님께서 우리의 굳어진 혀를

풀어주실 것입니다!

유학 초기 때의 일이었습니다.

서너 달이나 되는 긴 첫 번째

여름방학 기간을 맞이했습니다.

사목 체험도 할 겸,

제대로 된 현지 언어도 배울 겸,

야심차게 한 시골 본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본당 신자들의 배려로

참 행복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유치원 수준의 언어로 겨우

미사 집전 정도만 하는 저를

측은히 여긴 신자들께서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다만 크게 괴로웠던 일 한 가지는,

밤이면 밤마다 거듭된

저녁식사 초대였습니다.

뭐 대단한 만찬이 준비된

초대는 아니었습니다.

소박한 스파게티 한 접시나

피자 한판 두고, 포도주 잔을

기울이며 정담을 나누는

소박한 식사였습니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이런저런 긴 대화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남한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

요즘 북한 상황은 어떠냐?”

등등,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다 더 이상 깊은 대화가

안된다는 것을 파악하고 난 후부터는,

그저 꿔다논 보리 자루가 되고 맙니다.

뭔지도 모르는 길고 긴 말잔치 앞에

저는 그저 희미한 미소만 짓고

앉아 있었습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노래가사가 딱 제 처지였습니다.

당시 제가 느꼈던 소외감은

참으로 처절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이지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언어가 되어야 서로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고 언어가 되어야

상대방의 철학과 인생관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와 소통이 안되는 그는

그저 머나먼 존재,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게 되더군요.

따지고 보니 언어라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정말이지

대단한 것입니다.

한 인간 존재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언어는 한 인간의 인격을 드러냅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성품을 드러냅니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희로애락을 나누고

사랑과 우정을 쌓아갑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언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언어 장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

잊지 못할 추억담들을 나누며,

웃고 우는데, 나만 거기 끼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오랜 고독과

소외감 속에 살아온 말못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각별했던

예수님 눈에 그 가련한 존재는

즉시 가장 특별한 존재,

VIP, 우선적 선택의 대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은혜롭게도 말못하던 사람은

뜨거운 주님 사랑에 힘입어 즉각적인

치유의 은총을 받게 됩니다.

설마했었는데,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내 삶이 이렇게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고 배척된 영원한

이방인이요 왕따로 살다 끝나려니..’

했었는데, 자비하신 주님의 자상한

손길에 힘입어 새 살,

새 인생을 찾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말 못하는

이처럼 살아갑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눌러참아야만 합니다.

목구멍까지 어떤 단어가 올라오지만,

애써 도로 내려보내야만 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나만 빼놓고

다들 내 등뒤에서 수근거립니다.

앞에서는 환한 미소 짓지만

돌아서서 낄낄대며 인정사정없이

깎아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가련한

우리들 인생에 밀착동반하시니

용기를 내야겠습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우리의 굳어진 혀를

풀어주시고, 용기와 지혜를 더해주시어,

진정으로 해야할 말을 편안히 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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