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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14 조회수2,38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일

제1독서 신명 30,10-14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0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 율법서에 쓰인

 그분의 계명들과 규정들을 지키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11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계명은 너희에게 힘든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12 그것은 하늘에 있지도 않다.

그러니 ‘누가 하늘로 올라가서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들려주리오?

그러면 우리가 실천할 터인데.’

 하고 말할 필요가 없다.

13 또 그것은 바다 건너편에

 있지도 않다. 그러니 ‘

누가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서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들려주리오?

그러면 우리가 실천할 터인데.’

하고 말할 필요도 없다.
14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제2독서 콜로 1,15-20

그리스도 예수님은

15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복음 루카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어느 책을 읽다가 “사...랑...해...”

라는 구절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사랑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줄임표를

사용하면 어떻습니까? 저자가 말하는

사랑에 잠시 머무르면서 한 번 더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어려운 사랑을 선택했는지,

사랑 고백의 힘듦에 대해 느끼게 됩니다.
사랑을 느끼고 실천하는 것은 이렇게

말줄임표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자리에 잠시 머무르고, 한 번 더

깊이 생각하는 것 안에서 사랑은

 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잠시

머무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또한 깊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어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많은

‘빨리빨리’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운전할 때를 떠올리면 이런 부분은

 분명해집니다. 앞 차가 너무나도

 너무 천천히 간다고 경적을 울리고

 앞 차에 바짝 대어서 위협을 하듯이

 운전합니다. 그런데 앞 차의 운전자가

지금 운전을 힘들어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잠시 앞 차 운전자의

마음에 잠시 머무르고,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여기에서 앞 차 운전자를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이 나오게 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차가 굉음을 울리면서 과속하며

앞으로 갈 때에도 역시 머무르고

 생각해보십시오. ‘급한 일이 있나 보다.’라는

 사랑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저 사랑한다고 말만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말만 하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바로 잠시 그 자리에 머무는 것,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의 이웃이 된 사람은

누구였냐고 물으시지요.

먼저 사제와 레위인은 길반대편으로

 피해갑니다. 아마도 자신들의 직무와

 무관하다고 생각했을 테고,

또 피해자가 죽은 줄 알고 시체에

 손을 대서 부정을 타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복잡한 일에 엮이기 싫다는 단순한

이유만을 내세워서 그 사람에게

 머무르려 하지 않았고, 한 번 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랑의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다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유만을 내세워서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사람을 버려둘 수도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가지 않는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유다인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상황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머물렀고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사랑을 행합니다.
우리 역시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면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고 말씀하십니다. 제1독서에도

나오듯이 사랑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고 따르는 참된 제자의

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다.

(사마라구)

(고흐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


여보,당신

자신의 배우자를 어떻게 부르십니까?

아마 ‘여보’, ‘당신’이라는

표현을 쓰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혹시 그 말의 뜻을 아십니까?
우선 ‘여보’는 한자로 같을

 여(如)와 보배 보(寶)자를 쓴다고 합니다.

즉, ‘보배와 같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할 당(當)과

몸 신(身)자를 씁니다.

곧 ‘당신은 바로 내 몸이다’라는 뜻입니다.

정말로 사랑이 넘치는 말이고

 아름다운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뜻을 새기면서

상대방을 부르고 계십니까?

혹시 화를 내면서 이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배우자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이

 들 때에는 이 의미를 새기면서

천천히 불러 보면 어떨까요?

‘당신은 보배와 같아요.

당신은 바로 내 몸입니다.’라는

의미를 새기면서 화를 내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안에서 머물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안에서 사랑이 나옵니다.

(얀 비냔츠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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