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7월 15일(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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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7-15 | 조회수1,15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7월 15일 월요일 [(백)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보나벤투라 성인은 1217년 무렵 이탈리아의 중부 지방 바뇨레조에서 태어났다.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의 수도자가 된 그는 파리에서 공부한 뒤 파리 대학교 교수로 학문 연구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작은 형제회의 총장으로 선출된 보나벤투라는 자신의 수도회 설립자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기를 완성하였으며, 철학과 신학 분야의 권위 있는 저서도 많이 남겼다. 1274년 무렵 선종한 그를 148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588년 식스토 5세 교황은 중세의 뛰어난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존경받고 있던 보나벤투라 주교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초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고,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강에 던져 버리게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신다. ◎제1독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다.> 1,8-14.22 그 무렵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더욱 번성할 것이고,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 자손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 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 온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화답송◎ 시편 124(123),1-3.4-6.7-8(◎ 8ㄱ)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 사람들이 우리에게 맞서 일어났을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 우리를 거슬러 저들의 분노가 타올랐을 때, 우리를 산 채로 삼켜 버렸으리라. ◎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거품을 뿜어내는 물살이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저들 이빨에 우리를 먹이로 내주지 않으셨으니,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 우리는 새처럼 벗어났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네.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네. ◎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 ◎복음환호송◎ 마태 5,10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복음◎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복음입니다. 10,34─11,1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사람은 목숨을 잃고,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오늘의묵상◎ 제1독서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이집트의 새 임금은 자기 백성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 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자신들에게 큰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에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제 노동을 시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억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번성하고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하느님 계획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보니 파라오는 모든 것을 참 지혜롭게 대처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파라오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 곧 “너의 후손은 …… 그들의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창세 15,13)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마지막까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 속에 있습니다.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서로 갈라서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집안 식구가 서로 원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가족끼리 싸우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를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면 가족이라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마지막까지 지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다만, 자기 가족만을 위하여 예수님을 버린다면, 진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마저 죽음에 빠트리는 일이 됩니다. 이렇게 보니 오늘 복음은, 가족을 진정 사랑하는 길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여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주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이끄는 것임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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