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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24 조회수1,85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제1독서 탈출 16,1-5.9-151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3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5 엿샛날에는, 그날 거두어들인

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보면,

날마다 모아들이던

것의 갑절이 될 것이다.”
9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주님께서 너희의 불평을 들으셨으니,

 그분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하고 말하십시오.”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이 광야 쪽을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복음 마태 13,1-9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어제는 참 많이 걸었던 하루였습니다.

서울 지역의 성지를 거의 걸어서

 순례를 했거든요.

스마트폰을 보면 얼마나

 걸었는지가 나오는데,

어제 하루 동안의 걸음이 37,363보였고

그 이동 거리는 자그마치 28.4Km

도가 된다고 알려줍니다.

이러다보니 마지막 순례지에 갈 때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서 가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하지만 도착하고 나서는 다시 힘이

솟으면서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순례지가 저의 모교인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일이 바로 어제의 일인 것처럼 떠올려집니다.

기도하던 성당, 공부를 했던 강의실과 도서관,

생활을 하던 기숙사, 맛있는 식사를 했던 식당,

신나게 운동을 했던 운동장, 묵주기도를 하면서

걸어 다녔던 산책길 등등 모든 곳이

너무나도 익숙했습니다.
성당에 앉아 기도하던 중에 그 당시

제 기도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신부만 되게 해주세요.’

라고 참 간절하게 기도했던 그때였습니다.

제가 신부로 살아간 것을 보면 분명히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가 했던

기도만 들어주신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단순히 신부만 되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

지금을 잘 살 수 있도록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다양한 사목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셨고,

 글 쓰는 일과 강의하는 일 역시

 제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만 부탁드렸지만 주님께서는

 하나만이 아니라 무수하게

많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
삶 전체를 떠올려보십시오. 분명히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셨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이끄심에 내 몸 전체를 맡기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님께

맡기기 보다는 내 멋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 컸던 것은 아닐까요?

그때에는 주님의 선물을 내 안에서

드러낼 수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이 씨는 딱 하나의 열매만을

가져오는 씨가 아닙니다.

어떤 땅에 떨어졌느냐에 따라서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고 하십니다.

즉, 우리 마음 상태에 따라서 많은

결실을 맺을 수도 있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멋대로 살려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께 철저히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며, 이로써

주님의 좋은 씨가 내 안에서

싹을 틔워서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용기란 두려워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두렵지 않으면 용기가 없다.

(간절히 기도했던 서울신학교 성당)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좋은 생각’ 중에서)

조선시대에 점을 잘 치기로

유명한 도사가 있었다.

세 사람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중

도사를 찾아가 묻지요.
“과거에 급제할 수 있을까요?”
도사는 눈을 감고 한참 생각에

빠졌다가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손가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라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세 사람은 더 묻지 않고 길을 떠났다.

제자가 도사에게 물었다.
“한 손가락은 무슨 의미입니까?

세 명 중에 한 명만

 급제한다는 것입니까?”
“만약 그리된다면 그런 뜻이지.”
“그러면 두 명이 붙으면

틀린 것이 아닙니까?”
“그때는 한 명이 떨어진다는 뜻이지.”
“만약 셋 다 급제하게 되면요?”
“하나도 빠짐없이 합격한다는 뜻이다.”
도사는 말했다.
“나쁜 점괘가 나오면 낙담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잘 된다고

말하면 경솔해 지는 법이지.

사실 점괘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무조건 맞는 점괘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굳이 이상한 것에 자신의

삶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함을 기억하면서

스스로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명동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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