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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말씀 받아드릴 우리 마음의 자세가 /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26 조회수1,335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너희는 씨 뿌리는 이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하늘 나라의 말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 마음에 뿌려진 것마저 그냥 막 빼앗는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이를 두고 한 거다. 그래서 환난이나 박해에 그는 곧 걸려 넘어져 버린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듣지만, 세상 걱정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열매를 못 맺는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잘 깨닫는다. 그런 이들은 백 배, 예순 배, 어떤 이는 서른 배의 열매를 낸다.”(마태 13,18-23 참조)

 

씨 뿌리는 이의 비유이다. 씨가 어디에 뿌려졌는가에 따라 그 결실이 엄청나게 다르다나. 그러므로 씨를 언제, 어디에, 어떻게 뿌리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 역시 많은 씨앗을 뿌린다. 주님을 위해 나름으로 많은 활동을 한다는 증거이다. 그런데도 때로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결과에 실망과 함께 상처마저 입는다. 그 이유가? 시기나 방법에 문제가 된 것이 아닐까?

 

일예를 들어 같은 말과 같은 행동에도, 받아들이는 상대에 따라 그 결과가 쾌나 다르리라. 그러기에 받아들이는 이의 처지를 먼저 이해하고, 그에 합당하게 해야 할게다. 이런 노력에 따라 소출의 결과는 열 배, 백배의 결실을 얻게 되리라. 하느님은 언제나 씨를 뿌리시기에, 그 주어진 은총은 태초부터 지금껏 그침이 없었다. 좋은 땅 나쁜 것 가리지 않는다. 날씨와도 무관하다. 문제는 땅이다. 좋은 곳에는 많은 열매를, 나쁜 곳은 적게, 어떤 곳은 아예 맺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좋은 땅과 그렇지 않는 곳의 차이는? 정말 어떤 게 좋은 땅일까? 습기 찬 곳, 가시덤불이 없는 땅이어야 할까? 예수님도 세례 후 광야에서 유혹에는 자유롭지 못했다. 여타 성인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들은 걸림돌을 만났기에 더욱 기도했고, 하느님께 의지하며 살 수 있었다. 처음부터 아예 좋은 땅에 태어난 이는 하나도 없었다. 어쩜 좋은 땅은 만들어진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이 에게 엇비슷한 땅을 주셨을 게다. 그래서 어떻게 사는지가 쾌나 중요하다. 문제는 각자 가꾸기 나름이다. 버려두면 황폐해진다.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무엇보다 땅이 비옥해야만 할게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생활을 해야 하나? 그저 주어지는 대로 막연하게 따라만 가야 하나? 분명히 새로운 삶으로 가야하리라. 기도하면서 그분과의 만남을 유지해가야 할 게다. 그런 삶을 살면 또 다른 감동에 잠긴다. 그게 은총의 체험일 게고 믿음이리라.

 

그런데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 이들 중 조그만 어려운 일에도 금세 버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에. 또 어떤 이는 들은 뒤 뿌리를 내리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 빠져 실천하지 않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들은 뿌려진 씨앗이 가시덤불 속에 가두어져 숨이 막혀 죽어 버리기에. 이런 돌밭이나 가시덤불 밭에 해당하는 이들은 결코 하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게다. 그들에게서는 어떤 열매도 나오지 않을 것이기에.

 

하느님은 이렇게 끝없는 은총을 부어주신다. 우리 삶이 그분만 향한다면 기쁨은 배가된다. 좋은 땅의 결실이다. 말씀대로 이웃을 도우며 살려 하니 손해 보아야 하고, 말씀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려 하니 휴식을 양보하거나 일을 포기해야 한다. 이기심과 명예욕, 분노와 원한에 열심히 물을 준다면, 그것들이 말씀의 씨앗을 말라 죽게 하여 끝내 없어지게 되리라. 내 밭에 무엇을 기르는지, 내 마음에 자리한 게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씨,가시덤불,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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