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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29 조회수1,85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

제1독서 1요한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복음 요한 11,19-27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사람이기에 실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실수를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실수를 많이

하게 될 때는 언제일까요?

한 연구팀이 이것을 조사해본 결과

가장 많은 실수를 할 때는 바로

 ‘화를 낼 때’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화난 채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화를 낼 때는 주차하려고 후진을

하다가 기둥에 박는 경우가

더 늘어나게 된답니다.

 그리고 화를 내고 있을 때에는

잘못하지 않은 사람을 큰 소리로

 꾸짖는 어처구니없는 행동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화는 더 큰 실수를

 키울 뿐입니다. 그렇다면 실수를

함으로써 화가 줄어들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화는 실수와 함께 점점

더 커질 뿐입니다.

따라서 화가 났을 때에는

최대한 빨리 그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언젠가 화를 내시는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어떻게 할지를 모르시더군요.

 그래서 이 분을 손을 꽉 잡고서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화가

났는지를 말씀하시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묻자,

“화 낼 만하니까 화내지요.”

라고 하십니다. 나중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후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화를 내고 있었을 때

무슨 이유였는지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화를 낼 이유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화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화를 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화를 낼수록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 누가 가장 큰 손해를

겪게 되겠습니까? 가장 큰 피해는

 바로 내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후회만 가져오는 화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이를 마르타 기념일을

맞이하는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마르타의 주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라자로와 마르타와 마리아를

예수님께는 특별히 사랑하셔서

자주 이 집을 찾아가서

 함께 하셨습니다.

더군다나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불가능이 없는 분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주님의 능력이라면

오빠인 라자로를 죽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빠인 라자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도 늦게 찾아온

주님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요?

화가 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녀는

원망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대신 더욱 더 주님께 대한

건한 믿음을 보여 주지요.
그 결과 그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마지막 날에야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마르타의 말과는 달리,

지금 당장 다시 살아나는

영광을 목격하게 됩니다.
화가 나고 원망할 일이 많은

세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때 주님께 대한 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그 믿음을 통해 화를 뛰어넘을

 있는 힘을 얻게 되고,

주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고자

마음 먹은 만큼 행복하다.

(에이브러햄 링컨)

(마르타 성녀)


신앙생활

열정을 쏟아서 일에 몰두하다보니

 신앙생활을 잊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십시오.

일에 몰두하다보니 아기 낳는 것을

잊어버려서 어느 순간에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고

 말하는 분은 세상에 없습니다.

일에 몰두하더라도 가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또 자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한 그 안에서

소소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즉, 오로지 일에만 몰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에 몰두해서

 신앙생활을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분은 여유가 있어도

신앙생활을 못할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우선순위가 제일 나중이기에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다 하고나서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 자체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집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훌륭한 신앙생활이 됩니다.

 아무리 바빠도 또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들을 만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주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할

대상을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은 내 삶의

한 가운데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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