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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3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31 조회수1,96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제1독서 탈출 34,29-35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30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31 모세가 그들을 불렀다.

아론과 공동체의 모든 수장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가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32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33 모세는 그들과 이야기를

다 하고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

34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그분 앞으로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고,

나올 때까지 쓰지 않았다.

나와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였다.
35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로 가리곤 하였다.

복음 마태 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우리는 누구 때문에 상처

받았다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어떻게 내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면서

도저히 용서하기 힘들다는 말도 하지요.

 이는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서도

갖게 되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향해,

그리고 사랑한다며 하나의

가정을 꾸린 내 배우자를 향해서도

 이런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 때문에

상처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왜 거의 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어떤 책에서 여성에

대한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자들은 자주 아프다.

 생리통부터 배란통,

 출산, 갱년기까지... 이렇게

 아프면서 늙어간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머니께서

늘 아프다고 하셨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프면서 늙어간 것인데,

 ‘왜 늘 아프다고 하실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더군다나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는 삶을 살 때

얼마나 더 아프셨을까요?
내 자신이 상처 받은 사실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남에게 상처 준 사실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받은 상처에만 집중을 하면

복수하겠다는 마음, 미워하겠다는 마음,

상대하지 않겠다는 무관심까지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과연 주님의

사랑을 찾을 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에 집중을 해보십시오.

 저절로 미안한 마음에

 사랑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사랑의 실천을 통해

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을 내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만이 이 세상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으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오늘 복음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를 상인에 대한

비유입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소유한 채 밭을 살 수가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진주를 발견한

상인은 어떠했나요?

그 역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서 진주를 샀습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분명한 포기와

 선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이나 좋은 진주는

바로 하늘 나라의 큰 가치를

의미합니다. 즉, 영원한 삶이라는

커다란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는

선택은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가장 올바른 것일까요?

사랑만이 정답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모든 사람이 입을 맞춰

똑같이 노래를 부른다면

그 노래의 가사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스태니슬로 저지렉)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하늘나라 문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하늘나라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 사도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이야기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도 한 번 맞춰보십시오.
“한 이름난 부자가 어느 날

 강물에 빠졌다. 그는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정신없이

허우적대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그때 세 명의 남자 일행이

그 근처를 지니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바로 현장에서

도망쳐 버렸고, 또 한 사람은

그곳에 있던 작은 돛단배를

하나 잡아탔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그대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그렇다면 누가 용기 있는 자이며,

누가 겁쟁이고,

누가 탐욕스러운 사람일까?”
그는 곧바로 물속에 뛰어든

사람이 용기 있는 자이고,

도망친 사람이 겁쟁이고,

작은 돛단배를 잡아탄 사람이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답이 아니라고 합니다.

일 년 뒤에 다시 그 자리에 서서

 다른 답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답이 아니랍니다.

또 일 년이 지난 뒤에 다시

그 자리에 섰을 때,

그는 도저히 정답을 몰라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하늘나라 문이

열렸다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하늘나라의 문이 열린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판단을

섣부르고 하고 있을까요?

그 모습이 과연

주님께서 좋아하실까요?

판단하고 단죄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데 집중해야

하늘나라 문이 열립니다.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우리도 사랑에 집중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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