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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8.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02 조회수1,610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8월 2일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제1독서 레위 23,1.4-11.15-16.27.34ㄴ-37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4 “너희가 정해진 때에 소집해야

하는 거룩한 모임,

 곧 주님의 축일들은 이러하다.

5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주님의 파스카를 지켜야 한다.

6 이달 보름에는 주님의 무교절을

지내는데,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7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8 그리고 이레 동안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쳐야 한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10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가서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너희 수확의 맏물인 곡식 단을

사제에게 가져와야 한다.
11 사제는 그 곡식 단이 너희를

위하여 호의로 받아들여지도록

주님 앞에 흔들어 바친다.

 사제는 그것을 안식일

다음 날 흔들어 바친다.
15 너희는 안식일 다음 날부터,

곧 곡식 단을 흔들어 바친 날부터

 일곱 주간을 꽉 차게 헤아린다.

16 이렇게 일곱째 안식일

다음 날까지 오십 일을 헤아려,

새로운 곡식 제물을

주님에게 바친다.’
27 또한 일곱째 달 초열흘날은

속죄일이다. 너희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고행하며,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쳐야 한다.
34 ‘이 일곱째 달 보름날부터

이레 동안은 주님을 위한 초막절이다.

35 그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36 너희는 이레 동안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친다.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친다.

이날은 집회일이므로,

너희는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37 이는 너희가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하는 주님의 축일들로서,

이때 너희는 그날그날에 맞는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희생 제물과

제주를 주님에게

 화제물로 바쳐야 한다.’” 

복음 마태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누구나 자기 시야의 한계가
 세상의 한계인줄 안다.’라고 말했습니다.
 큰 공감을 갖게 하는 말입니다.
언젠가 어떤 모임에서 한 분이
좋은 의견을 냈습니다. 그러자
다른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거 제가 해봤는데 별로 효과가 없어요.”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효과 없다면서 단언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자신의 행동에서는 실패를
맛보았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가장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자기가 생각한 것이 모두 옳다고 착각합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시각을 보편적인
관점으로 믿어버리는 것이지요.
이들은 자신의 말 앞에 이런 말들을
자주 붙입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말을 붙임으로 인해 자신의
시각을 정당화하지만, ‘누구나’는
일부분에 불과하고 ‘상식적으로’는
비상식적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러한 착각의 늪에서 절대로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생각의
크기를 더욱 더 넓히면서
많은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단순히 자기 자신을 단순히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내 시야를 더욱 더 넓혀주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가십니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많은 기적과 말씀을 통해
 이분이야 말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향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라고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른 곳에서 행하셨던 많은 기적들을
고향에서 오히려 일으키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고향이기에 더 많은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좁은 시야로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향 사람들은 오히려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내 시야를 넓혀주는 겸손을 통해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혼자만의 비전은 몽상이나

망상으로 그칠 수 있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최태성)

(주님 앞에 겸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둑질

어느 스승이 한 제자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도둑질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
제자는 “곧바로 뉘우치고

훔친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라고

공손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도둑맞은 것이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평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것 역시 원래대로 회복시켜

 주어야 하겠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판단,

특히 부정적인 판단은 이렇게

그의 평판을 훔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훔친 평판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겠는가?

바로 그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하고

 또 그에게 칭찬과 지지를 해주었을 때

비로소 그 평판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남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 우리이지요.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에 대한

‘뒷담화’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뒷담화가 남의 평판을

훔치는 도둑질이었네요.

(명동성당의 성모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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