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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8.0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07 조회수1,73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8월 7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제1독서 민수

13,1-2.25―14,1.26-30.34-35

그 무렵 주님께서

파란 광야에 있는

 1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찰하게 하여라.

각 지파에서 모두 수장을

한 사람씩 보내야 한다.”
25 그들은 사십 일 만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26 그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왔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다.

 27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를 보내신 그 땅으로

가 보았습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
28 그러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들도 보았습니다.

29 아말렉족은 네겝 땅에 살고,

 히타이트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은 산악 지방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족은 바닷가와

요르단 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30 칼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3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33 우리는 또 그곳에서

나필족을 보았다.

아낙의 자손들은 바로

이 나필족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14,1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7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28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29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

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

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

30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34 너희가 저 땅을 정찰한 사십 일,

그 날수대로,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너희는 사십 년 동안 그 죗값을 져야 한다.

그제야 너희는 나를 멀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5 나 주님이 말한다.

나를 거슬러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에게 나는 기어이

이렇게 하고야 말겠다. 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복음 마태 15,21-28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작년 우리나라 전국 성지순례를

다녔을 때가 떠올려집니다.

전국 성지순례 책자를 하나 들고서

책에 나와 있는 지도를 잘못 봐서

엉뚱한 곳으로 갈 때가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나오지도 않는

성지도 있기 때문에 책자에 나와 있는

지도와 설명에 의지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짜증을 내면서 이 책자 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이 책자 때문에 시간과 힘을

낭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상도의 어떤 성지를 찾아 가는데

그날이 가장 더운 날이었습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정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운 날 이게 무슨 고생이야?’하면서

 방향을 바꾸려고 하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이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꼭 가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서

가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이곳에서 관광을

 하면서 전부터 가졌던 바람을

하나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길도 생각지도

못한 좋은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잘못된 길은

 나쁜 길이라고 고정을 시키려고만 합니다.

사실 우리의 삶 안에서는 잘못해서 간 길이

오히려 좋았을 때가 더 많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좋을 것입니다.
원하는 대학이 있었지만 다른 대학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원하지 않는

대학에 들어간 것을 ‘미래가 없다’

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자신의 인생이 끝장난 것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도 분명히

밝은 미래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길이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참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나안

부인을 보십시오. 그녀는 유대인들이

멀리하는 이방인입니다.

유대인들은 가나안 사람을

구원의 반대편에 있다고,

그래서 잘못된 길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라고 외칩니다. 잘못된 길 안에서도

구원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강아지로 표현하는

모욕적인 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구원의 기쁨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누가 어떤 행동을 해도

구원의 기쁨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을 보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마태 15,28)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가득 찰 때가 있습니다.

잘못된 길에 있다고 힘들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찾는 믿음이 분명히

내 삶을 기쁨과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하면

칼날 위에 서도 잘 수 있다.

(탈무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잊지 마십시오)


힘내십시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서

정말로 무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텔레비전의

어떤 프로를 보고서였지요.

이 프로가 너무나 무서워서 화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눈을 꾹 감고

있었고, 때로는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그 장면을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마 이 프로를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바로 1970년대

후반에 보았던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입니다.
컬러텔레비전이 아닌

 흑백텔레비전으로 볼 때였습니다.

특수효과도 조잡했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도 너무나 형편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봤던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더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텔레비전의 어떤 프로에서

당시의 큰 인기를 끌었던 그 무서운

 장면을 잠시 보여주더군요.

무서웠을까요?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습게만 보였습니다.
지금의 고통과 시련이 내게 가장

두려운 순간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두려움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이 순간을 떠올리면서

‘겨우 이거로 힘들어 한 거야?’

라면서 웃게 될 것입니다.
지금 어려워하시는 분들...

모두 힘내십시오.

웃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지금 70년대의 전설의 고향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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