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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제1독서 (민수20,1-1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08 조회수1,154 추천수4 반대(0) 신고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제1독서 (민수20,1-13)

 

모세가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바위 앞에 불러 모든 다음,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 주랴?"  (10)

그러고 나서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물을 마셨다.  (11)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공동체에게 주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12)

 

'이 반항자들아'로 번역된 '함모림'(hammorim)'기억하다'(1사무12,5), '배반하다',

'거스르다'(이사1,20), '반항하다'(시편78,40) 등으로 번역되는 동사 '마라'(mara)의

분사형 남성 복수형에 정관사 '하'(ha)가 결합되어 '배반한 자들','거역한 자들'이란 뜻의

명사적 용법으로 사용된 것이다.

 

보통 '마라'(mara) 동사는 거의 모든 용례에서 하느님께 반항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여기서의 '이 반항자들'이란 말도 모세와 아론에게 반항하고 대든 것을

지적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 반항하고 대적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뜻 보기에 이 말은 모세가 하느님의 관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민수기 20장 8절에서 단순히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 고 말씀하셨을 뿐이지,

백성들을 질책하라는 말씀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모세 개인의 감정적 발언이라고 보아야 한다.

 

아마도 모세는 물이 없음으로 인해 원망하고 시비하는 이 백성들을 보면서

지난 40년간 수없이 자신과 하느님께 대들었던 광야 1세대를 떠올렸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불신앙과 죄악으로 결국 가나안 땅 목전에서 돌이켜야 했던(민수14장)

쓰라린 과거가 다시 연상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무리 출애굽(광야) 2세대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아버지때에 있었던

지난 40년의 역사를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모세의 반응은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만을 순종하여 그대로 준행했어야 했다.

 

모세와 아론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하며 바위를 두 번인 친 까닭에

가나안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게 된다.

 

'두 번 치자'로 번역된 '와야크 ~파아마임'(wayak ~paanaim)에서,

'두 번'에 해당하는 '파아마임'(paamain)'한 번', '한 차례'를 뜻하는

'파암'(paam)의 쌍수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몇 번의 횟수를 사실적으로 나타내기보다는 그 횟수를

특별히 강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파아마임'은 단지 '두 번'이란 횟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두번 씩이나'라는 의미가 강조되어 드러나는 것이다(창세27,36; 41,32; 1열왕11,9).

말하자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쳤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것은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겸손히 따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었음을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자신의 노여움이나 의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경험과 방법으로 일을 처리했던 것이다.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에서 드러나지만, 모세가 바위를 두 번 치자마자

곧바로 바위에서 많은 양의 물이 나왔음을 보여준다.

 

전에 르피딤에서 지팡이를 가지고 바위를 침으로써 물을 내게 했던

자신의 경험(탈출17,6)만을 의지하여 바위를 내리쳤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바위에서 갈증에 목말라 있던 이스라엘 공동체와

그 가축들이 마시기에 충분한 양의 많은 물이 나게 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없는 연약한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보게 된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12)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로 번역한 '레하크띠세니'(lehaqdisheni; to sanctify me)

'거룩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다쉬'(qadash)의 사역형 부정사 연계형에

전치사 '레'(le)와 1인칭 단수 접미어가 결합된 것으로

'나를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본질적으로 거룩하신 분이시고 내적 영광은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에

새 성경처럼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하여'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여기서 거룩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하느님의 외적 영광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믿지 않아'로 번역된 '야안 로 헤에마느템 삐'(yaan lo heemanthem bi;

because you did not trust in me)의 뜻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분명히 '나의 말'이 아니라 '나를'(삐; bi)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과 구원 계획을 믿지 않았다는 말로 알아 들어야 한다.

당신 백성을 햔한 하느님의 뜻과 특히 출애굽(광야) 2세대를 향한 구원 계획,

바위에서 물을 내게 하심으로써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 하느님을 확인시키시고(탈출17,7),

또한 당신께 가까이 나아오는 자들을 통해 거룩하다 하심을 얻으시려는(레위10,3)

하느님의 뜻과 믿음으로 구하는 자에게 구원의 생수를 주시려는(요한4,10.14; 1코린10,4)

놀라운 구원 계획을 모세와 아론은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모세와 아론은 '우리가 ~나오게 해 주랴?' 하며 노기가 서린 눈빛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망각한 채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했던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셨던 모든 영적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믿지 않았던 광야 1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모세와 아론은 그 모든 영적들 가운데 나타난

하느님의 능력과 뜻과 계획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이 광야 1세대와 마찬가지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못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모세와 아론은 주님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했다.

 

르피딤에서의 물 사건(탈출17,1-7)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물을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갈증의 해결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여전히 하느님의 인도 아래 있는지

즉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시고 계시는지

확인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탈출17,7).

 

 

(복음)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16,16)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도미니코, 도밍고 , 도미니카 교우님들의 영육간의 건강과 행복하심을 기원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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