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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8.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08 조회수1,668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9년 8월 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제1독서 민수 20,1-13

그 무렵 1 이스라엘 자손들,

 곧 온 공동체는 친 광야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백성은 카데스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미르얌이 죽어 거기에 묻혔다.
2 공동체에게 마실 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갔다.

3 백성은 모세와 시비하면서 말하였다.
“아, 우리 형제들이 주님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4 어쩌자고 당신들은 주님의

공동체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시오?
5 어쩌자고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고약한 곳으로 데려왔소?

여기는 곡식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자랄 곳이 못 되오. 마실 물도 없소.”

6 모세와 아론은 공동체 앞을 떠나

만남의 천막 어귀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8 “너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너의 형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불러 모아라.

그런 다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

이렇게 너는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여,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마시게 하여라.”
9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주님 앞에 있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10 모세가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바위 앞에 불러 모은 다음,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 주랴?”
11 그러고 나서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물을 마셨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공동체에게

주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13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과 시비한 므리바의 물이다.

주님께서는 이 물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셨다.

복음 마태 16,13-23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미국의 유명 배우 릴리 톰린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생쥐들끼리 치열하게 싸워

승리한들 생쥐는 결국 생쥐일 뿐이다.”
이 글을 보고서 옛날의 일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딱지치기했는데 제가 친구들의 딱지를

다 딴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딱지가 생겼고 친구들은 이런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저 역시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서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자랑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부는 하지 않고 쓸데없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면서 호되게 혼났습니다.
같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랑스럽겠지만,

어른의 눈에는 정말로 쓸데없는

모습이며 한심한 모습일 것입니다.

앞서 릴리 톰린의 말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후의 승리자

생쥐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존경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제대로 구별도 하지 못할 것이고,

그저 조금 힘센 생쥐로 생각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우리의 인간 모습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고 승리하고 남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얼마나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까? 마치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나를 인정하고

특별 취급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 안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은 하느님 앞에서

그렇게 특별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것은 유일하게 하느님의

 사랑뿐입니다. 그렇게 많은 죄와

잘못을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구한 사랑만이 유일한 특별함입니다.
이 특별한 사랑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상 사람들에게 맞추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 맞추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뜻에

온전하게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심으로써 당신께서 참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는 질문은 주님의 신성과 인성을 온전하게

고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대한

정답은 베드로가 발표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정답이 그를 장차 교회의

근본인 바위가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장차 고난을 겪을 것이라는

말씀에 베드로는 반박하지요.

주님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교회의 반석’이라는 호칭에서 ‘사탄’

이라는 호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길을 좇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사탄’

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수난과 죽음까지

 선택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집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걸림돌이 아닌,

주님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좋은 선택은

옳은 것을 하는 것이고,

그다음으로 좋은 선택은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이며,

가장 안 좋은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베드로에게 교회의 반석이라고 명하셨던 곳)


전쟁만큼 힘든 삶.

최영미 시인의 신간 시집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습니다.
되는대로
대강, 대충 살아왔어요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쟁만큼 힘들었어요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중에서)
자신에게 닥친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향해 종종

이렇게 말해주지 않습니까?
“대강, 대충 살아!!”
그런데 대강, 대충 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대강,

대충 산다고 해도 힘든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열심히 하든

 열심히 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쁨을 찾으려면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늘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만큼……

(오늘은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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