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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20주일, 2019년 8월 18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16 조회수1,067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20주일, 2019818.

 

루가 12, 49-53. 히브 12, 1-4.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내가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주제들입니다. 복음서들은 오늘 우리가 사는 문화권의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부터 2000년 전 팔레스티나의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불을 지르러 왔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옮기면, 예수가 방화범(放火犯)이 되려 왔다는 뜻입니다. [구약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불에다 비유합니다. [예레미아 예언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자. 주님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 두자고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20, 9).  이 말씀을 배경으로 오늘 복음을 이해하면, 불을 지르러 왔다는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 불길같이 타오르게 하기 위해 왔다는 뜻입니다.

 

내가 받을 세례가 있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서](10, 38)는 예수님의 죽음을 세례라고 표현합니다. 세례는 사람을 물속에 잠그면서 행하는 의례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과거의 삶에 죽어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의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는 데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 자기의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주저와 고뇌를 겪으면서 하는 일입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신 다음,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불화(不和)를 좋아하신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그 시대 유대교의 묵시문학은 세상 종말에 하느님이 가까이 오시면, 가정이 분열되고 사회적 갈등이 고조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시대 유대인들은 하느님이 심판하실 종말이 가까워지면, 이 세상의 기존 질서들이 모두 무너진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알리는 것은 이렇습니다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이 세상에 오셨고, 그분은 당신의 말씀이 불길 같이 타올라 온 세상에 전해지기를 열망하셨습니다예수님은 당신이 전해야 하는 말씀을 위해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유대교 당국과 갈등을 겪었고, 결국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그분은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이 고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분이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계신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그리스도신앙인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의 생존도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그리스도신앙은 많은 곳에서 분열의 계기가 되었습니다가정공동체가 찢어지며 가족끼리 반목하였습니다예수님이 그 시대 유대인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돌아가셨듯이, 그리스도신앙인들도 가정이 분열되고, 서로 반목하는 아픔을 겪고, 많은 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한국의 그리스도신앙 초기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한국의 초기 신앙인들에게는 분열과 반목의 아픔이 많았습니다신앙인이 되어서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사람이 20,000명에 이릅니다그리스도신앙은 인간의 혈연보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더 소중하다고 믿습니다.  [마르코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3, 35).  가장 중요한 인연은 형제, 자매, 혹은 아버지, 어머니라는 혈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자녀 되어 살겠다는 마음 안에 있는 하느님과의 인연입니다.

 

그리스도신앙은 분열과 반목을 겪으면서 싸워 이기고 군림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신앙인은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다가 그 충실함 때문에 발생한 분열과 반목을 참고 견딥니다오늘 복음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분열과 반목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그리스도적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은 분열과 반목을 자초하거나 조장하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그것을 참고 견딜 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선교한다는 사람들의 독선적 자세를 만납니다그들은 그들만이 진리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웃을 존중하지 않습니다그리스도신앙은 승리하고 명령하는 데에 있지 않고, 사랑하고 섬기는 데에 있습니다

 

바울로 사도가 테살리니카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살펴보고 좋은 것을 지키시오.”(1데살 5, 21).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모든 것을 살펴보는현명함을 잃고, 아집(我執)에 사로잡혀 살겠다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어리석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불길 같이 타오르게 하지 못합니다. 우월감을 가지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려 하지 말고, 오늘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바라보는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섬김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아들 됨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마르 8, 34)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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