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사랑은 지속되어야 하는 의무입니다
부부간에 필요한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이 아닌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낭만적이고 달콤한 감정 위에 자리잡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가페의 사랑은 감정 위에 자리잡기보다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의지 위에 자리잡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그처럼 사랑을 감정으로 알지 않고 의지와 책임으로 아는 사람만이 변하지 않는 사랑을 소유할 수 있고, 사랑하면서 결코 절망하지 않게 됩니다. 물론 사랑에 감정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감정이 우러나서 사랑하는 것보다는 사랑하겠다는 결심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지속되어야 하는 의무입니다. 며칠만 사랑해보겠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장래의 변화는 하느님께 맡기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이 항상 사랑스러운 것만은 아닙니다. 남편에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내가 싫어하는 성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분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부분까지 사랑하려고 할 때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명령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힘들어도 의지적으로 사랑할 때 감정의 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흑과 백이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흑인과 백인이 한 수갑에 채인 채 포로 후송 도중에 탈출하게 됩니다. 비록 한 수갑에 채워져 탈출했지만 서로를 지독하게 싫어합니다. 그러나 한 수갑에 채워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가고, 같이 행동하고, 같이 잠을 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독히 미워하던 서로가 헤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수갑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기차에 흑인이 먼저 올라탑니다. 그리고 백인도 기차에 올라타려 하지만 그 기차에 타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싫어하는 존재와 영원히 헤어질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기차에 올라탄 흑인이 그냥 가지 않고 기차에서 뛰어내립니다. 그리고 흑인과 백인은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간의 정을 확인합니다. 서로 지독히도 싫어했지만 같이 있다가 보니까 정이 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둘은 뒤쫓아온 경관에 의해 붙잡히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부부관계는 사랑의 수갑에 채워진 관계입니다. 싫든 좋든 함께 정을 나누다 보면 마침내 사랑하는 자리로 가게 될 것입니다. 왜 배우자에게 싫은 부분이 있습니까? 그렇게 싫은 부분을 통해서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부부생활을 하다 보면 미워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하지만 계속 같이 있다가 보면 마침내 사랑이 싹트게 될 것입니다.
부부가 어떻게 만난 존재입니까? 60억 인류 중에서 만났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보통 고맙고 보통 감사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이것은 하느님께서 가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가정이 주는 행복보다 더 소중한 행복은 없습니다. 물질이나 명예나 다른 어떤 것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부부간에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서로 사랑해주는 것만큼 행복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단편소설을 다 읽어 보셨지요? 소설의 주인공 짐과 델라는 가난한 부부입니다. 월세 8달러를 내고 가구가 딸린 방에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그때에 델라는 남편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손에는 1달러 87센트의 돈밖에 없었습니다. 거울을 쳐다봤습니다. 자기의 무릎까지 오는 긴 머리가 보입니다. 델라가 마음에 어떤 결심을 합니다. 그러자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그리고 델라는 미장원에 갑니다. 긴 머리를 깎아 팔고 20달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금 손목시계에 달 수 있는 은빛 시계줄을 21달러에 샀습니다.
한편 남편 짐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시계줄이 없어서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던 금시계가 나왔습니다. 물끄러미 시계를 바라보다가 그 시계를 팔고 아내를 위해 선물을 샀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짐은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선물을 풀러보니 아내가 그 동안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장식용 빗 세트가 나옵니다. 그것을 보고 델라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짐에게 선물을 내밉니다. 선물을 풀러보고 시계줄을 본 짐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날 저녁 이 두 부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랑하면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귀한 것을 내 놓은 것이 정말 행복입니다. 그 중에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진실한 사랑! 그 사랑이 주는 행복을 능가할 행복은 없습니다. 그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느님은 가정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가정이 창조됨으로 완성됩니다. 가정은 창조의 꽃이고 창조의 아름다움이 정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 창조의 의미를 생각하고 좋은 가정을 만들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사는 가장 아름다운 삶일 것입니다.
(이한규님)
교만의 증상들
이기심
자기의 욕심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짓밟고 있다면, 자기의 재능을 활용해도 다른 이에게 축복이 되지 못한다면 자신의 재능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교만으로 인해서 섬김을 받고자 하며, 항상 자기만 옳다고 여기며,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소원이 항상 성취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자라나게 된다.
우월감
교만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을 멸시하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교리나 행동, 고유의 가치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기게 만든다.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은 교리나 불화가 아니라 바로 교만이다. 서로에게 주고받을 만한 가치 있는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 모든 분쟁과 분열, 불신, 갈등과 불화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비꼬는 말
비꼬는 말은 위장된 유머로서 다른 사람의 결점을 부각시켜 상처를 입히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편견을 드러낸다. 비꼬는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감정이 상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당당히 그것을 다룰 용기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는 쓴뿌리가 자라나는 것이다.
정죄와 비난
교만한 자는 비판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장점이 드러나면 삐딱하게 받아서 무시해 버린다.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쁨이나 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다른 사람을 모함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한 점에 대해 있는대로 얘기해 버리는 것은 곧 그 사람에 대한 모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참지 못함
참지 못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계획, 일정을 사람보다 더 중시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참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사랑과 절제가 없다는 증거다.
탐심
질투와 탐심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탐심은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과는 동떨어진 세상의 것을 바라보게 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갈망할 것이다.
강퍅한 마음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은근히 기뻐한다. 다른 이들을 위로할 줄도 격려할 줄도 모르며, 다른 사람이 잘 되는 일에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한다. 강팍한 마음으로 변해가는 첫 단계는 싫어하는 사람과 마주하지 않는 것이다.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면서 서서히 냉각되어 그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그대로 방치하면 교만에 뿌리를 내린다.
배우기 싫어하는 마음
고침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어떤 잘못을 지적할 때, 그 말을 경청하는가?, 화를 내는가? 합리화하고 변명하는가? 아니면, 해명하는가? 성숙한 사람일수록 남의 충고나 지적을 잘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훈계 속에는 최소한의 진실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아부
칭찬과 아부는 같은 것이 아니다. 칭찬은 다른 사람을 신실히 세워주기 위한 것이지만, 아부는 조종하려는 의도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얻기 위한 정직하지 못한 행위이다.
자기연민
상처받고 지치고 약점잡히고 오해받고 압박받고 죄를 지을 떄, 그리고 낙심하거나 침체될 때 우리는 쉽게 자기연민에 빠진다. 이런 습관을 깨뜨리기 위해 때로는 격전을 치러야 하며,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기 연민은 교만을 조장하며 그 이면에 있는 이기적인 목적을 합리화한다. 만족할 줄 모르며 이기적이기 때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요구한다.
(창골산 봉서방)
성모 승천 (루카 1,39-56)
우리 교회는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 나라로 영광스럽게 개선하시어 하늘에 오르셨음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모 승천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하더라도 모든 크리스찬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역사(성전)로 믿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높은 자격과 신분을 보아서라도 그분의 육신이 무덤에 묻혀 썩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성경의 말씀을 좀더 깊이 살펴볼 때 그분이 하늘 나라에 오르셨음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인간 마리아는 그의 전 일생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했습니다(1,38).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우리 교회는 성모 승천을 모든 신자들이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로 공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모님의 승천을 경축하면서 성모님이 세상에 살면서 지니셨던 마음가짐의 일부를 복음을 통해 잠시나마 더듬어 보기로 합시다. 복음에서 성모님은 언니 엘리사벳으로부터 축복의 인사를 받으십니다(1,42). 그러나 당신은 축복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고 축복받는 모든 일은 다 하느님의 은혜요 덕분이라고 이르십니다(1,49). 성모님은 지난날 미천했던 자신의 처지를 보더라도 축복받을 만한 이유가 없음을 솔직히 밝히십니다(1,48). 당신이 가지신 것은 가난과 미천 같은 보잘것 없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베푸시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큰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전인류에게 알려 주십니다(1,50). 하느님의 이 같은 섭리를 찬송하는 마음이 성모님의 감사가(1,46-55) 전체에 잘 흐르고 있습니다. 성모님이 읊으신 이 감사가는 성모님 한 분의 감사가일 뿐 아니라, 동시에 당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당신 이전의 모든 사람들과 당신 이후의 모든 사람을 대표한 감사가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은 평범한 인간이시면서도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성모님께는 항상 인간이라는 신분에서 더하거나 덜하거나 하는 과장과 꾸밈이 없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신분에 솔직하셨고 그 이상을 넘어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높은 지위에 올림을 받으신 다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비천한 여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심으로써(1,38.48), 당신 본래의 겸손한 자세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성모님의 이 같은 겸손한 자세야말로 하느님의 어떠한 은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한 바탕이기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이 성모님께 크신 은혜를 주신 것처럼, 진실하고 겸손한 바탕 위에 당신의 모든 계획을 펴신다는 섭리를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 승천을 축하하면서, 하느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게 된 성모님의 깊은 겸손을 마음으로부터 본받고 몸으로 따를 때 성모 승천을 축하하는 뜻이 되겠습니다.
(김용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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