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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8.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28 조회수1,58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9년 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1테살 2,9-13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10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11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12 당신의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 23,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몇 년 전에 요리하다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채칼에 손가락 끝이 베였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그냥 살짝 베인 줄 알았는데,

지혈이 되지 않을 정도로

 피가 너무 많이 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병원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상처가

 너무 커서 아물어도 흔적이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상처를 입어 치료를 한 지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상처가 아직 남아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께서 흔적이 남을 것

같다고 했지만, 지금 현재

그 흔적조차 찾기가 힘듭니다.
비슷한 시기에 저의 운전 부주의로

 자동차에 흠집을 내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흠집이 몇 년이 지난 지금

몸의 상처가 사라진 것처럼 똑같이

 사라졌을까요? 큰 흠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 흠집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스스로 치유까지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적은 바로

내 안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몸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다면서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기적이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놀라움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몸이기에 주님께서는 그냥 겉으로

보이는 육체를 뛰어넘어서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무장을 강조하십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겉으로는

 정말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마음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다.”라고 하십니다.
무덤이 닫혀 있는 한 겉모양은

아름다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을 열면 그 광경은

참혹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겉으로만 그럴싸할 뿐 속마음은

역겹다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모습으로는 절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불행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불행의 길로 가고 있을까요?

아니면 행복의 길로 가고 있습니까?
대단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의 몸을 다시금 떠올리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검은색도 닦으면 빛이 납니다.

(어느 구두닦이 아저씨의 말)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무엇을 담고 있는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글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너희들은 내가 준 희귀한

선물을 잘 유지하였느냐?
너희의 얼굴을 내보이라.
기쁨과 희망이 잘 보존돼 있느냐?
맞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정말로

 희귀한 주님의 선물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는

 ‘나’입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아니라,

부정적인 가치로만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인천의 구월동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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