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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2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31 조회수1,505 추천수9 반대(0)

5년 전의 일입니다. 아시아 청년대회와 124위 복자 시복식이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교황님께서 참석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아시아 청년대회에 교황님이 참석하신 유례가 없습니다. 시복식에 교황님이 참석하신 유례가 없습니다.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한국교회에 대한 교황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뜨거운 열정과 신앙에 대한 교황님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의 일원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교황님은 말과 행동으로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서울대교구의 교구청 신청사 축복식이 있었습니다. 방명록을 준비하였습니다. 교황님은 가장 구석에 아주 작은 글씨로 서명해 주었습니다. 큰 글씨로 중앙에 서명해 주셨으면 방명록이 빛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구석에 작은 글씨로 서명한 교황님의 ‘Francisco’는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더 빛이 났습니다.

 

다른 일정은 방한 준비위원회와 교황청이 함께 준비하였습니다. 오직 하나 교황님께서 결정하신 일정이 있었습니다. 아시아 청년대회와 124위 시복식과는 무관한 일정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꽃동네를 방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에 있을 때 꽃동네의 수도자를 보았다고 합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수도자가 고마웠다고 합니다. 교황님은 그때의 고마움을 꽃동네를 찾아서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이 있는 곳이 꽃동네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 곳이 꽃동네입니다. 교황님은 그들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도자와 평신도를 만났습니다. 신앙인이 있어야 할 곳이 바로 그런 곳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시복식이 있는 아침이었습니다. 교황님은 작은 차인 ‘Soul’을 탔습니다. 작은 차이기도 하지만 차의 이름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영혼을 위로하는 교황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복식에 앞서서 교황님은 아이들을 축복해 주셨고, 슬픔이 가득한 세월호 유족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세월호 유족이 전한 편지를 받아 주었습니다.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에서 순교복자의 기도와 세월호 유족의 기도가 함께 하였습니다. 교황님의 위로와 사랑이 함께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광화문 광장에 가득했습니다. 저는 교황님이 들고 다니는 가방을 보았습니다. 30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낡은 가방이었습니다. 그 가방은 비록 낡았지만 따뜻한 교황님과 오랜 시간 함께 있어서 행복했을 겁니다. 아픈 이에게 성체를 전하는 자리에 함께했을 겁니다. 가난한 이를 찾아가는 자리에 함께했을 겁니다. 낡은 가방이 교황님과 함께 있으니 세상 어느 명품이 부럽지 않아 보였습니다.

 

지거 퀴더는 사제이면서 성화를 그린 화가입니다. 제게 깊은 울림을 준 그림은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입니다. 베드로는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릎을 꿇고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놀란 얼굴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베드로의 발 이 담긴 물 위에 비치고 있습니다. 이 그림 하나가 베드로 사도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그림 하나가 제자를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겸손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겸손은 말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다 잘될 겁니다.’라는 말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너나 잘해, 이만하면 됐지, 다음에 할게, 그래서 어찌하라고, 또 그런 실수를 했구나라는 말은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반했던 제자들에게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은 용서에서 출발합니다.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는 사람, 용서받기보다는 용서하는 사람,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 이웃을 위해서 자기를 버리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영원한 생명에 초대됩니다.

 

겸손은 행동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주님이라고 말한다고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여러분의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주는 겁니다.” 겸손을 행동으로 드러낸 자캐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습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는 말로 하는 겸손은 잘했지만, 행동으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에게 행동을 요청하셨습니다. 성직자, 수도자, 신앙인은 모두 행동하는 겸손을 드러내야 합니다.

 

겸손은 자리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나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 내가 필요해서 만나는 사람은 겸손을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나에게 아무런 보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야 겸손은 드러납니다. 우리의 몸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원의 선우경식 선생님은 평생 가난하고 아픈 이들과 함께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평생 아프리카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습니다. 마더 테레사 성녀는 평생 약자들과 함께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자리는 보이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면, 아픈 이들과 함께했다면, 정의를 드러내는 이들과 함께했다면 겸손한 사람입니다.

 

들판의 곡식들은 이제 곧 알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나의 삶이, 알찬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겸손과 온유의 거름을 듬뿍 주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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