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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9.0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01 조회수1,082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9월 1일

연중 제22주일

제1독서 집회 3,17-18.20.28-29

17 얘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네가

더 사랑을 받으리라.

 18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20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28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29 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긴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

제2독서 히브 12,18-19.22-24ㄱ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복음 루카 14,1.7-14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동창 신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전 신학생 때의 일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며칠 전의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거의 30년의 일입니다.

이렇게 옛 친구들과의 대화는

과거의 일들을 현재로 소환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세 번이나 변할 수 있는 시간도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이 세상의 시간이 긴 것 같지만

사실은 정말로 짧은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이 세상의 삶이 먼저가 아니라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후회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가면서 하느님 나라에

적합한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하느님 나라보다

지금의 세상에 적합한 사람이

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합니다.

하느님께 인정받기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항상 삶의

양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언제나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명이 언제나 자신에게 우호적이어야 하고,

 질병이나 사고는 자신을 비껴가야

정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은

없습니다. 운명에 대한 과도한 요구는

어쩔 수 없이 과도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모습이 과연 하느님께

 인정받는 모습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굳이

윗자리에 앉으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도둑질하다 들켜서

훔친 물건을 도로 내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도둑질한 물건을 가질

자격이 없으므로 가지고 있던 것을

 들키게 되면 그냥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더 귀한

이가 오게 되면 그 자리에 대한 자격이

없기에 자리를 내어놓아야만 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갖추고 있어야

하느님의 명령으로 그 자리를 얻게 되고,

하느님을 통해 영광의 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아오스딩 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그대를 들어 높이면

하느님께서 그대를 끌어내리실

것입니다. 그대가 그대를

끌어내리면 하느님께서 그대를

 들어 높이실 것입니다.”
제1독서의 집회서 저자 역시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라며,

주님께서는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시지요.

그런데 우리는 낮추는 것을

너무나도 어려워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리는

그 누구도 차지하기 싫어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거의

텅텅 비어있고,

하느님 나라에서 영광을

차지하는 사람의 수가

적은 것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쫓는,

그래서 어떤 지위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 예수님의 맘에

 꼭 맞는 그런 신앙인이 되도록

우리 모두 조금씩

노력하도록 합시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단순해지고 또 단순해지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

(30년전 개강 피정 때 모습.

정말로 엊그제 일 같은데요...)


사고의 깊이 그리고

내 마음의 넓이를 키워야 합니다.

스위스 태생의 조각가이자 화가,

판화가인 알베르트 자코메티를 아십니까?

그는 인간의 실존을 왜소한 선의 형태로

응축한 걸작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의 작업실이

겨우 일곱 평 남짓의 작고 허름한

작업실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워낙 유명한

미술가이니 작업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의 생존 당시,

이 작업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습게도 내가 처음 몽파르나스의

이폴리트 뱅드롬에 위치한 이 작업실을

가졌을 때 난 이곳이 매우 작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래 있을수록 이곳은 점점 커졌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곳에 넣을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죽을 때까지

이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무한한 너비와 깊이로

그의 작품 세계는 확장했고 심오했습니다.
우리는 환경 탓을 종종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공간을 확장하고

더 많은 물질적인 것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많은 것에 관한

 관심은 내 정신을 분산시켜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또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단순화시키면서 내 사고의 깊이

그리고 내 마음의 넓이를 키워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만 사고의 깊이,

내 마음의 넓이를 키울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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