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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9.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02 조회수1,252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제1독서 1테살 4,13-18

13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16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17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복음 루카 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똑똑한 지식인들, 특별히 과학자나

 최첨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들 가운데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기에 믿는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논리로는 우리의 작은 뇌를

사용해서 밝힐 수 없는 진실이

많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어떻습니까?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믿는 사람이

 훨씬 더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하느님은 당연히 내 존재를

뛰어넘는 분이신데, 자기 생각을

벗어나면 이해할 수 없다면서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분입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고 전합니다.

실제로 주시한 사람은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주시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런 모습을 갖는다면 어떨까요?

반면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라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이 거룩한

예언자나 아주 비범한 인물에게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러나 이 믿음은 자신들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엘리야가 사렙타 과부에게만 갔고,

엘리사가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고쳐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언제나 뛰어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주시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그분 안에서 희망과 기쁨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혹시 좁기만 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믿을 수 없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길을 막는 무언가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넘어가거나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다시 가십시오.

(하늘나라를 선포하시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

부모와 자녀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억압과 방임을 통해서

갈등이 더욱더 심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최초의 자기주장을 펼치는

시기인 사춘기 때 30%를 놓아주십시오.

그리고 성인이 되면 또 30%를

 놓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 30%를 가정을 이루었을 때

놓아주어야 합니다.
이제 몇 %가 남았나요?

 10%가 남았지요.

남아 있는 이 10%의 끈으로

 장성한 자녀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90% 이상을

통제하고 있다면 갈등이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아직 사춘기도 되지 않았는데도

자유를 주겠다고 90% 이상을

풀어놓았을 때도 나중에 성인이

되어 어렸을 때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서

갈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 이 갈등을

 풀기가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기억하면서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실천한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성가정을 이루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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