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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요한 3,13-1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14 조회수1,379 추천수0 반대(0) 신고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요한 3,13-17)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불평을 하던 이들에게 불 뱀을 보내시고, 구리 뱀을 만들어 뱀에 물린 사람들이 그것을 쳐다보면 살아나게 하신다. (민수 21,4ㄴ-9)
4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화답송 시편 78(77),1-2.34-35.36-37.38(◎ 7ㄴ)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 내 백성아,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 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입을 열어 격언을,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언을 말하리라. ◎
○ 죽이시던 그때서야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다시 돌아와, 하느님이 그들의 바위이심을 기억하였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 그들의 구원자이심을. ◎
○ 그 입으로 그분을 속이고, 혀로는 그분께 거짓말을 하였네. 그분께 마음을 굳건히 두지 않고, 그분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네. ◎
○ 그분은 자비로우시어,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멸망시키지 않으셨네. 당신 분노를 거듭 돌이키시고, 결코 진노를 터뜨리지 않으셨네. ◎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하신다. (요한 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제1독서 (민수21,4ㄴ-9)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8)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9) 

 

민수기 21장 8절의 '불 뱀'은 실제적으로 '불 뱀'과 모양이 비슷하게 만들어진 '구리뱀'(놋뱀)을 말한다.

겉으로는 불 뱀의 형상을 가졌지만 독이 없었고, 또 전혀 해가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쳐다보는 자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 '구리 뱀'(놋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다(요한3,14.15; 갈라3,13; 골로2,15).

 

'기둥'(장대)에 해당하는 '네쓰'(nes)'빛나다'(즈카9,16), '눈에 띄다'라는 뜻의 '나싸쓰' (nasas)에서 유래한 말로서 많은 사람들이 눈에 확연히 띄도록 끝에 헝겊을 매단 '기'(旗) (예레50,2), '기호'(이사11,2)를 뜻하는 말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어떤 공동의 행위를 위해서, 또는 중요한 정보의 전달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모이게 하는 '표지'를 의미하고 있다(이사13,2; 18,3; 31,9; 예레4,21; 에제27,7).

특별히 '네쓰'(nes)는 주님을 부르는 명칭 가운데 '주님은 나의 깃발(군기)'이라는 뜻이 있는 '야훼 니씨'(탈출17,15)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기둥'으로 번역된 '네쓰'(nes)는 단순한 장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특별한 표지를 통하여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세운 기(旗)로 보아야 한다.

 

이 표지는 바로 불 뱀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구리 뱀이었고, 그 정보는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둥 위에 단 구리 뱀은 하나의 '공개적인 전시', '승리의 표지'였다.

치명적인 독을 가진 '불 뱀'을 '구리 뱀'의 형상으로 처형한 하나의 승리적인 전시였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예표한다.

즉 십자가의 사건은 한 귀퉁이에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 수 있게 행해진 것이 아닌,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를 이기셔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자가 되셨다는 하느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널리 선포하시기 위해 빛이 있는 곳에서 행해진 대승리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8)

 

'보면'으로 번역된 '웨라아'(weraah)에서 접속사 '와우'(wau)는 이어 나오는 '와하이' (wahai; 살게 될 것이다)에 결합된 접속사 '와우'와 연계되어 단순히 '그리고' 뜻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계속적인 진행을 나타내어 '그리고 그때' 뜻을 지닌다.


따라서 '웨라아 오토'(weraah otho)'그리고 그것을(기둥에 달린 구리 뱀) 바라볼 때'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살게 될 것이다' 해당하는 '하이'(hai)는 기본형이 '하야'(haya)인데, 이 동사는 '살다'(에스텔4,11), '회생하다'(2열왕13,21)란 뜻을 가진다.

 

이처럼 '생명의 보존' 기본적인 개념으로 지니면서도 '생명의 회복'이란 보다 적극적인 개념을 동시에 내포하는 동사 '하야'가 쓰인 것은 '불 뱀'에 물려 고통받는 자들을 '치유하시는 하느님' (탈출15,26)의 은혜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또 그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 것이다.

 

이와 같이 '불 뱀'에 물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자들이 하느님의 은총의 역사(役事)를 덧입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기둥에 달린 구리 뱀'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구리뱀' 자체에 어떤 신통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절대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다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9)

 

'쳐다보면'에 해당하는 '웨힙비트'(wehibbit)는 한번을 제외하고(이사5,30) 모든 용례에서 사역형으로만 사용되는 동사 '나바트'(nabat)에 접속사 '와우'(wau)가 결합된 형태로 쓰였다.

'나바트'(nabat)'바라보다'(탈출33,8), '살펴보다'(시편142,5), '감찰하다'(애가5,1), '앙망하다'(시편34,6) 등으로 번역되는데, 특히 이 동사가 '하느님을 바라보다'란 뜻으로 쓰일 때는 '하느님께만 눈을 고정시키고 유일한 도움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다'의미를 내포하게 된다(시편34,6; 이사51,1; 22,11).

 

본문 역시 온전한 믿음과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본다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기둥에 달아놓은 구리 뱀을 바라보면 살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불 뱀'에 물린 상처와 모든 증상이 말끔히 치유되었다.

이처럼 '나바트'(nabat)라는 단어의 의미대로 그들의 '쳐다보는' 행위는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맛 볼수 있게 된 것이었다(요한3,16).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복음 (요한3,13-17)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6)

 

요한 복음 3장 16절에서 21절까지하느님께서 외아들을 보내신 이유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를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란 사실과,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구원과 심판에 대한 진리가 선명하게 비교된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밝혀진다.

 

특별히 이중에서 요한 복음 3장 16절외아들을 보내신 하느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가장 드러내므로, 사람들은 '작은 복음' 혹은 '복음서 안에 있는 복음'등으로 부른다.

 

여기서 '너무나'에 해당하는 '후토스'(hutos; so)'이렇게', '이와 같이' 등을 뜻하는 부사로서 하느님께서 세상에 대해 나타내신 사랑의 분량과 정도를 지시하는데, 원문에서는 이 단어가 문장의 서두에 나와 하느님의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신'에 해당하는 '에가페센'(egapesen; loved)의 원형조건없는 사랑, 영적인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agape)의 동사형인 '아가파오'(agapao)이다.

 

희랍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인 70인역(LXX)에서는 사랑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히브리어 단어 '아헤브'(aheb)를 거의 다 '아가파오'(agapao)로 번역했다.

히브리어 '아헤브'(aheb)에 나타난 사랑의 강도는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애정말한다.

 

한편, '세상'으로 번역된 '코스몬'(kosmon; world)은 일차적으로 '인류'를 가리켜 쓰였지만, 특히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게 될 교우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구약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의 대상은 선민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된다는 고정관념은 예수님의 이러한 선포를 통해서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다.

 

사랑을 본질로 하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과 유사성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당신의 신성(神性; 천주성)에 참여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지성으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자유의지로 그것을 실천하는 계명 준수를 통항 영생(永生)의 길이었다.

 

하지만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죄를 지어서 하느님의 신성(神性)에 참여하는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류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지만, 본질이 사랑이신지라 인류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당신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마음을 풀기 위해서 당신과 위격과 레벨이 같으신 무죄(無罪)하신 외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게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며(회개), 십자가에서 마지막 피 한방울, 물 한방울을 쏟기까지 자신을 사랑한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믿음)은 누구든지,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갈 수 있는 구원(救援)과 영생(永生)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마치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처럼 여겨진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행동하고 계심이 예수님께서 천국의 영광스런 옥좌를 버리시고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 특히 십자가상 죽음의 사건에서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에 해당하는 '파스 호 피스튜온 엔 아우토'(pas ho pisteuon en auto; whoever believes in him)는 앞선 요한 복음 3장 15절에서도 반복되는데,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담겨져 있다.

 

새 성경에서 '누구나'로 번역된 '파스'(pas)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지적되는 대상의 종류에 속하는 것을 모두 다 포함하는 '전체', '전부'의 의미이다.

둘째지적되는 대상각각의 '개체'를 강조한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외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적인 사실과 더불어, 구원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믿는 사람'에 해당하는 '호 피스튜온'(ho pisteuon)에서 '믿는'으로 번역된 '피스튜온'(pisteuon)현재 시제이므로 동작의 계속이나 반복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원에 이르는 진실한 믿음은 매일 매 순간 삶의 전과정에서 연속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지, 혹자가 생각하듯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단 한 번의 고백이 영원한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세상'이란 말은 '인류 전체'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개인적으로 사랑하시며, 마치 사랑할 사람이 단지 '나'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이 세상 전체를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은 또한 철저히 개별적 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멸망하지 않고'

 

'멸망하지'에 해당하는 '아폴레타이'(apoletai; shall perish)'아폴뤼미'(apollymi)의 부정(不定) 과거 가정법 중간태이다.

희랍어에서 능동태는 동작 자체를 강조하지만, 중간태동작의 주체를 강조하며 동작과 주어를 보다 밀접하게 연결시켜 준다.

말하자면, 이 문구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신, 바로 그 하느님의 목적이 잘 함축되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성부 하느님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어서 '아폴레타이'(apoletai)에 이르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아폴뤼미'(apollymi)'파괴되다', '멸망하다', '죽는다'는 뜻인데, 희망의 단절과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이들의 처지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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