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9월 15일(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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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9-15 | 조회수83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9월 15일 주일 [(녹) 연중 제24주일]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종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사랑을 거부하는 고집 센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우리를 중개하시는 아드님의 공로로,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위해서도 교회는 천사들과 함께 잔치를 벌입니다. 말씀의초대 주님께서는 수송아지 상을 만들어 제사 지내는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시다가 모세의 애원을 들으시고 재앙을 거두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예수님을 박해한 죄인임에도, 사도의 직무를 맡기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린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한다고 하시며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드신다. ◎제1독서◎ <주님께서는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32,7-11.13-14 모세에게 이르셨다.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만들어 주겠다.”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큰 힘과 강한 손으로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기억해 주십시오.”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화답송◎ 시편 51(50),3-4.12-13.17과 19 (◎ 루카 15,18 참조)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1서 말씀입니다. 1,12-17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쳐흘렀습니다.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불사불멸하시고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환호송◎ 2코린 5,19 참조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복음입니다. 15,1-32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뒤쫓아 가지 않느냐?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이웃들을 불러,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이렇게 말하였다.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아버지에게로 갔다. 떨어져 있을 때에 마음이 들었다.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종들에게 일렀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들에 나가 있었다.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어기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오늘의묵상◎ 서양의 한 인류학자가 남아프리카 부족의 아이들에게 과자 상자를 보여 주며 달리기 경주를 시켜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우분투”라고 말하며 함께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백인 학자가 의아해하며 왜 경쟁하지 않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슬퍼하는데 어찌 나만 행복할 수 있나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분투”란 아프리카 코사어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또는 ‘함께 있어 내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이웃과 함께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게 창조되었습니다. 이웃과 경쟁하는 것은 독약을 마시며 건강해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신 이유는, 인간이 행복하지 않으면 당신도 행복할 수 없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아기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혼자 행복할 수 있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회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회개란 무엇이 참행복인지 아는 것입니다. 처음에 작은아들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임을 깨닫고 아버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의 행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큰아들은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아직은 아버지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이 일치를 이루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죄를 이겨 행복할 때 아버지도 행복하십니다. 죄를 짓는 사람이 부러우면 아직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죄는 자신과 이웃을 아프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임을 아는 사람이 회개한 사람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죄를 멀리할 수 있는 사람이 회개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하느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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