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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9.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21 조회수1,348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에페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복음 마태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새벽마다 30km 정도 자전거를 탑니다.

출발하는 시간은 새벽 5시 30분쯤,

주위가 어두운 시간이라 보이는 것도 없고

(자전거 라이트를 켜면 바로 앞에만 잘 보입니다)

사람들도 없습니다.

이렇게 약 1시간 30분 정도 자전거를 타니

조금 지루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를 탑니다.
어제 아침에도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르막길에서 어느 할아버지께서

저를 향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자전거 속도를 줄여서 “어르신, 왜요?”

라고 묻자, “강화 읍내 가는 버스가

언제 오나?”라고 물으시더군요.

분명히 버스가 올 때가 되었는데

오지 않으니 자전거 타고 가고 있는

저를 세워 물어보신 것입니다.
버스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매일 자전거를 타면서 거의 이 시간에

버스가 지나갔던 것을 기억하면서

조금만 기다리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서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는 순간, 오늘은 아무것도

듣지 않고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를 눈으로

먼저 보았기 때문에

멈춰서서 말씀을 들을 수가 있었지,

만약 보지 못했더라면 할아버지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이런 식으로 스스로

차단했던 소리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특히 다른 이들의 도움을 잘 듣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반성으로 이어폰을

다시 꽂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더 많은 말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는 길은

먼저 들을 때에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오는

 이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그분을 따를 수가 있었습니다.
마태오 사도는 세리로서 많은

재산을 축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돈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많은 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복음서를 집필하기도 하지요.

여기에 오늘 복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을 초대해서 식사하는 것을

보면 사교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사는 데 있어서 부족한 면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욕심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부르심에

곧바로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마태오

사도를 보면서 우리 자신을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내 귀를 막아서

주님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주님의 구원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의 불행은

결핍이 있기 보다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감에서 온다.

(헬렌켈러)

(카르바조의 마태오 사도의 소명)


내가 보태고 있는 것

아는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주례 선생님의 인상 깊은

주례사가 생각납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사람이 30을 넘으면

고쳐 쓸 수가 없습니다.

그저 보태서 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내가 보태서 쓰는 것입니다.”
큰 공감을 하게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3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자신의 습관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결국, 고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보태서 쓰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보이면

 얼른 내 것으로 보태주면 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 나

약함 모두 인정해주시지요.

대신 당신의 사랑을

우리 삶에 보태주셨습니다.
지금 나 자신이 내 이웃에게

보태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제 순교자성월 기념음악회는

성황리에 잘 마쳤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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