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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외부인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27 조회수1,218 추천수1 반대(0) 신고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외부인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만 일 년 동안 그곳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함께 지내면서 수많은 군중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안티오키아 주위 사람들이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되었다.(사도 11,25-26 필자 의역) 

 

  대략 44년경 그러니까 교회가 창립된 지 대략 13년의 세월이 흐른 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이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다. 

 

  이 호칭은 신앙이 없던 안티오키아의 주위 사람들에 의해서 생겨난 호칭이다. 주위 사람들이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을 그리스도인들로 부르게 된 것은, 신자들의 입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언하며 아주 줄기차게 전교하자 그러한 별명을 지어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가능케 하는 사건이 사도행전 26장에 있다. 바오로가 카이사리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헤롯 아그리파스 2세가 바오로를 심문하게 된다. 바오로가 그 심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줄기차게 증언하자, 아그리파스 2세가 다음과 같이 외친다. "당신은 조금 있으면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게 만들겠군."(사도 26,28)

 

  오늘날 '그리스도교'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는 자주 듣는 단어들이기에, '그리스도인'이란 표현이 성경 안에 수도 없이 나올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세 차례 나올 뿐이다. 사도행전에서 두 번(사도 11,26 ; 26,28) 그리고 베드로1서에서 한 번(1베드 4,16) 나온다. 그나마 사도행전에서는 두 번 다 신앙이 없는 유다인들이 유다교를 믿는 이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이 칭호가 교회 안에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교부 이냐시오 성인 덕분이다.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이냐시오 성인께서 이 용어를 자주 사용하시면서 오늘날처럼 널리 쓰이게 되었다. 주목할 점은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외부인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그리스도인이란 용어를 세상에 널리 퍼뜨린 사람도 안티오키아의 주교인 이냐시오란 점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는 참으로 깊다. 그 의미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언행, 삶의 목표, 가치관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첫 번째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이다.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이란 의미의 단어도 있는가? 그리스말로는 없다. 하지만 라틴말에는 있다. 예수이타 Jesuita다. 정확한 의미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란 뜻이다. 오늘날 예수회원들을 영어로 제수이트 Jesuit라 부르는데. 예수이타에서 온 단어이다.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를 얻게 된 것은 바오로가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합류해 바르나바와 공동사목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가 바르나바와 함께 일한 일 년 사이에 '수많은 군중들'을 가르칠 수 있었고 그 결과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본다.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어 함께 교회를 건설하도록 의도하신다. 바르나바가 받은 은사는 주로 위로와 격려의 은사로써 그는 공동체를 화합시키는 데 능력이 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면서 이러한 은사만으로 교회를 이끌어 갈 수는 없다. 한편 바오로는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복음 선포와 가르침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다. 그는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에서 믿지 않는 유다인들을 당혹하게 할 만큼 강력한 복음 선포를 한 사람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두 지도자가 공동체를 이끌어감으로써 교회는 더욱 성장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바르나바가 바오로를 동역자로 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바르나바가 바오로와 함께 공동사목을 한 것은 단순히 일손이 필요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바르나바가 받는 달란트와 바오로가 받은 달란트가 서로 다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도 공동체 발전을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훌륭한 동역자들을 찾아야 한다. 그 동역자는 나와는 다른 은사를 갖고 있어서 서로 보완 보충될 수 있어야 한다.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 ㅣ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출처 : 예수회 후원회 이냐시오의 벗들 2019년 10월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송봉모 신부님,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 바르나바,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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