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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제 잠에서 깨어나 ‘문재인 대통령은 하야하라! 일천만 서명운동’에 당신도 적극 참여하시라!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28 조회수1,510 추천수2 반대(3) 신고

잠들어 있는 가톨릭신자들이여! 

이제 깨어나‘문재인 대통령은 하야하라! 일천만 서명운동’에 당신도 적극 참여하시라!



 

(한국기독교총회 전광훈목사의 문재인 대통령은 하야하라! 일천만 서명운동에 당신도 적극 참여하시라! 이 나라가 김정은에게 넘어가는 절대절명의 이 순간에도 가톨릭교회는 묵묵부답이다. 신부 한사람도 참여하는 사람이 없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주교들 때문에 안된다"는 대답이다. 

이것이 한국가톨릭교회의 민낯이란 말인가? 부끄럽고 창피하기까지 하다. 이 나라가 망했다. 나라가 있어야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평신도들이여!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교회 회복을 위하여 이제 일어나 행동하자! 오는 10월3일 광화문에서 모이는 전국민의 4,19식 혁명의 날에 진실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반드시 참여하기를 기도드린다.    

www.1000mansign.com에 들어가 서명하시라! )

 

 

       

<수십 년 간 신학대학 다닐 때부터 배우고 들은 것이 대부분 모조품이고, 그 배우고 들어온 모조품을 평신도들에게 강론하며 주입시키려는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행위를 이제 우리 믿는 이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가? 오늘날 천주교 성당에서 제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강론하는 사제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도 영적인 신부가 있다면, 그는 지금 핍박받을 것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광화문에서 ‘정의구현사제단(현대표 김영식신부)’이 시국 미사를 드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동안 문재인의 사실상의 숙주 노릇을 교묘히 숨어서 해온 이들이 드디어 옹호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시국이 급하신 급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의 해방신학과 빨갱이의 정체가 만천하에 다 들어난 지금, 그들이 옹호하려는 세력이 옛날만 하겠는가? 

 

 

이에 맞서 이들의 행위를 폭로하고 교회를 수호하려는 대수천(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도 이에 강력히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사실 종교보다 위선이 편만한 곳도 없다. 세상보다 더한 가짜투성이라는 말이다. 루카12,1절은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그들의 위선을 주의하여라.”고 말한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오늘날 누구를 지칭하는가? 바로 종교지도자들이 아닌가?  주교들, 신부들이 아닌가? 

 

 

오늘날 교회에 교묘히 숨어들어 이제는 뻔뻔히 대놓고 활동하는 빨갱이들은 바리사이들의 위선 정도가 아니다. 아예 하느님을 부정하는 주사파(김일성주의자)들이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밖의 탄압이 아니라, 신성한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잘못된 인본주의 이념과 사상을 정당화시키고, 나아가 김일성을 섬기며 하느님을 부정하는 거짓 믿음에 있지 않는가? 

 

 

오늘날 믿는 이들은 바깥세상보다는 오히려 교회 내부의 누룩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어김없이 신성한 예배를 해방신학 이단자들이 광화문에서 신성한 예배를 무당의 굿판으로 만들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그들도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났을까? 해방신학 빨갱이들에게 성령이 임하겠느냐? 하느님의 천벌이 무섭지 않는가? 

 

 

엄격히 말해, 주사파 사상은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믿음도 교회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와 빨갱이 사상으로 무장한 정의구현사제단은 하느님의 믿음을 가장하여 교회에 숨어 은밀하게 활동하는 악의 세력들이다. 그들의 그 동안의 주장과 활동을 확인해 보라! 바로 그들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가라지”들이다.

 

 

전체 사제들 중에서 이들이 10% 쯤 차지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진실은 70% 이상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개신교도 50%에 가깝다고 한다). 주사파와 교회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그들이 바로 교회에 교묘히 숨어들어온 “가라지”들이다. 해방신학과 주사파 신부라니 이것은 명백한 거짓이며 사기이다. 이제 변명이나 부정할 수도 없다. 밀과 함께 가라지도 성장하여 모두 들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늘날 교회는 물론 각종 교회 단체와 학교를 사실상 점령했으며, 심지어 다른 종교, 민노총, 전교조, 거의 모든 사회조직까지도 그 세력에 포함시킬 만큼 치밀하며, 가면을 쓴 두 얼굴의 추악한 악한 영에 속한 사람들이다. 악한 영들이므로 그들은 절대로 변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이제 행동할 때이다. 순교의 자세로 이들에게 대항하고, 담대히 맞붙어 싸워 이겨야만 한다. 이미 교회가 악의 세력들에게 점령되어 버렸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도 은밀하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제 이 긴박한 국가적 위기를 맞아 믿는 이들은 정확한 자기표현을 미루거나 숨기지 말아야 한다.

 

 

마침내 그들의 정체가 정확하게 들어나고야 말았다. 수 십 년간 긴가 민가 해왔던 그들의 정체가 마침내 사탄의 자식들이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 넘어지게 하시는 하느님의 지혜는 참으로 놀랍다! 이 나라를 위하여 참으로 무릎으로 기도할 때이다! 그리고 싸워서 이들을 추방해야 한다. 

초대교회의 영성으로 이 부패한 교회를 회복해야만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므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은밀한 그리스도인에서 탈피하여 이 영적전쟁에 당신도 동참하시라!  아멘!> 

 

 

  

 

† 가라지의 정체가 마침내 확연히 드러났도다! (마태13,24-30)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천국(하늘나라)의 아들들이 되었다! 말씀으로 우리는 천국의 아들들이 된다! 1베드1,23은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거듭났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 생명을 얻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 떨어졌을 때 그것은 즉시 생명이 된다.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복음전파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당신에게 전파할 때 당신은 그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영접한다! 그러면 당신은 또한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을 영접하게 된다! 

 

마태13,25절에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는 사람들은 종들이며, 또한 그 당시의 사람들을 말하며, 넓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 자신을 언급한다. 잠을 자는 데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하나는 그것이 자연적인 것일 경우일 것이며, 또 다른 방면은 어떤 일로 너무 피곤하게 되어 깨어 있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원수”는 “마귀”이며(39절), “가라지”는 사람들이다. 마태13,38절은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라고 말한다. “밀”이 사람을 상징하듯이, “가라지” 역시 사람들을 상징한다. 여기서 악한 자의 아들들은 세상의 불신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 가운데 있던 혼잡한 무리들이 밀들과 함께 섞여 있었던 사람들이다. 초기시대의 이스카리웃 유다나 오늘날의 현대주의자들과 또한 해방신학 등 수많은 이단들이 매 시대마다 “가라지”들이었다. 그러므로 참된 믿는 이들 가운데 거짓 믿는 이들을 뿌린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종들이 깨어 있지 않고 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덧뿌리고 갔다”는 것은 원수가 일을 하는 방법이다. 성경의 예언은 마지막 날에 큰 반역, 곧 진리로부터 떠나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진리로부터 떠나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이 어떻게 진리로부터 떠나게 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상황은 이미 사도 바오로와 요한과 베드로의 시대에 예언되고 있다. 역사에 따르면, 가라지를 심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외곡하고, 자신의 행위를 의라고 정당화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진리라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들 자신만이 정의로운 그리스도인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다.

 

26-27절에서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리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라고 말한다. 종들은 누가 가라지를 심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가라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왜 그것이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날 어떤 일이 시작될 때에도 동일하다. 초기에는 아주 훌륭하고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하지 못한 어떤 악한 상황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악한 것으로 변질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종들은 그 결과는 알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주인은 그것이 원수가 행한 것이라도 말한다.

 

“원수”는 잠을 자지 않는다. 그는 밭에 몰래 숨어들어 밭주인이 해놓은 일을 망치려 한다. 이 비유에서 주목할 점은 밭주인이 취한 태도와 그의 종들이 취한 태도의 극명한 대비이다! 주인은 평온하고 태연한 자세를 취한다. 이에 반하여 종들은 흥분과 열정에 들떠 있다. 주인은 원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하다!

 

가라지는 밀과 섞여있다! 사탄의 역사는 극렬히 반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방하는 것도 있다! 사탄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뿐만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도 자신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2코린11,14-15). 사탄은 할 수만 있다면 핍박하고, 그럴 수 없다면 그는 모방한다! 그러므로 핍박보다 위조품을 더 조심해야 한다! 사단이 위조할 수 없는 영적인 체험이란 하나도 없다!

 

사탄은 심지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교통(친교)이나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연합과 같은 영적인 높은 차원의 문제조차도 위조할 수 있다! 오늘날 사탄은 거듭남과 구원과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교통까지도 위조한다! ‘세월호 참변의 유병언 구원파’라는 희대의 이단의 실체를 우리는 바로 얼마 전에 목격한 바 있다! 지금도 모이고 있다니 그들과 그들의 무리들은 진실로 구원받았을까?

 

해방신학에 물든 이들도 이제는 한계점에 직면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체가 빠짐없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실 신학교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공부한 내용은 신성한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본주의 이단인 해방신학뿐이지 않는가? 배운 것이 그것뿐인데,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들에게 영적 체험이나 영적 성장이란 무엇일까? 

 

 

그들도 실재(reality)를 체험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진리가 없는 체험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하필이면 사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어렵게 만들까? 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금과 진주와 보석이 아니라, 불에 타는 나무와 짚과 풀이였음이 드러날 것이다(1코린3,12-13)! 아무 것도 모르고 순진하기만 한 우리 평신도들이 참으로 불쌍하다!

 

28-29절에서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아니다. 너희는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어에서 ‘거두다, 모으다’라는 말은 ‘격렬한 힘으로 뿌리를 뽑다’라는 의미이다.뿌리를 뽑는 것은 평화로운 방법이 아닌 격렬한 방법으로, 곧 잘라내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잠언2,21; 신명29,28).

 

주인은 원수가 그렇게 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하다! 주인은 신경질적이거나 분별없는 행동을 하지 않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추수철은 분명히 올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비록 씨가 뿌려질 때부터 자랄 때까지는 섞여 있었다고 할지라도, 마침내 구분이 되고 서로 가려지게 마련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가라지는 흔히 밀밭에서 같이 자라는 독 보리를 일컫는데, 키와 열매가 밀보다 조금 더 크며, 검은 색 열매를 맺을 때에는 구분이 된다. 팔레스티나에서는 특히 이렇게 가려낸 가라지를 모아서 땔감으로 사용하였다. 이제 밀과 가라지가 모두 성장하여 “가라지”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30절에서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거두어들이라고 할 것이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수확 때에” 이 구절이 모든 문제의 실마리가 된다! 수확 때는 이 세대의 끝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불렀다(갈라1,4).

 

이 세대의 완결은 대환난과 함께 막을 내린다. 이 세대의 마지막 때에 두 가지가 나타날 것인데, 하나는 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라지일 것이다. 추수는 이 세대의 완결이며, 추수꾼은 천사이다(39). “단으로 묶어”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친분 관계에서 시작하여 같은 이념과, 종파로, 파벌로 묶고 있다. 이 단으로 묶는 일이 이미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권능은 온갖 근심 걱정과 그것들로부터 파생되는 갖가지 그릇된 행동주의를 금지한다. 좋은 씨가 뿌려져서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다가올 하느님 나라와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좋은 씨, 곧 천국말씀(13,19)을 뿌린 자리에 흔히 돋아나는 “가라지”를 보고 너무 놀라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 

 

 

이 씨를 뿌린 사람은 “원수”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추수를 거두어들일 것이다. 원수가 뿌린 씨에서 자란 것은 심판 때에 가려질 것이다. 교회 역사를 보면, 우리는 1820년 이래 지난 150년간 성경의 진리들이 하나씩 밝혀졌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믿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개인적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복음을 전하고, 사회적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사회적인 복음을 전한다. 연옥을 전하는 사람은 연옥만을 전하며, 전 천년설을 전하는 사람은 전 천년설을 전하고, 후 천년설을 전하는 사람은 후 천년설을 전하며, 무 천년설을 전하는 사람은 무 천년설을 전한다. 

 

그러나 “예”는 “예”이고, “아니오”는 “아니오”이다! 이제 가라지가 단으로 스스로 드러나 자연적으로 묶여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한 가지 표적은 이 “단으로 묶는” 것이다. 추수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그것은 휴거를 가리킨다. 어떻게 우리는 미래의 추수가 휴거를 가리킴을 알 수 있는가? 왜냐하면 밀을 곡간으로 모으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집은 그들의 밭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곡간은 집 가까이에 있었는데, 밀은 밭에서는 멀리 떨어졌지만 집에서는 가까이 있던 곡간에 저장되었다. 그러므로 곡간은 공중이다.

밭은 세상이고, 집은 아버지 하느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결실한 밀은 이 두 장소 어느 곳에도 저장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곡간은 공중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추수의 의미에 따른 해석이다!

 

 

그러므로 가라지의 비유의 내용의 포인트는 하늘나라에 속한 자녀들이 심판의 때까지 악한 마귀의 시험들을 인내하고 이겨냄으로써 마침내 마지막 영광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곧 이 세상에 이미 펼쳐진 하느님 나라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특히 그 마지막 때에 펼쳐질 한 비밀을 드러냄에 있는 것이다.

알렐루야! 아멘

<http://cafe.daum.net/yoondaniel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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