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6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28 조회수1,999 추천수12 반대(0)

오늘은 주일이어서 축일로 지내지 않지만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생일과 비슷한 날로 세례명을 정해 주셨습니다. 큰 형은 9월에 태어나서 미카엘, 작은 형은 12월에 태어나서 사도 요한, 동생은 10월에 태어나서 프란치스카로 세례명을 정했습니다. 저는 5월에 태어났으니 마티아로 하면 좋았을 텐데 부모님께서는 가브리엘로 세례명을 정해 주셨습니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낸 친구처럼 가브리엘 세례명이 좋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가브리엘 천사 이야기도 좋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뜻을 성모님께 전하였습니다.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듣고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요셉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요셉은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듣고 남모르게 파혼하려는 결정을 바꾸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는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전한 가브리엘 천사와 하느님의 뜻을 기쁜 마음으로 따른 성모님과 요셉의 순명이 있었습니다. 저의 세례명인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뜻을 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따랐던 성모님과 요셉 성인처럼 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을 따르며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세례명은 무엇인지요? 여러분도 여러분의 주보 성인의 삶을 묵상하며 오늘 하루 지내면 어떠신지요.

 

욕실과 방에 예쁜 발판을 깔아 놓았습니다.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던 욕실과 방이 예쁘고 환해졌습니다. 욕실에서도 발판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방에서도 발판을 보니 격이 높아진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방을 바꾸거나, 집을 수리하는 건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하지만 작은 정성과 적은 비용으로도 산뜻하게 기분을 전환할 수 있습니다. 싸움이 빈번하고, 쓰레기가 넘쳐나던 우중충한 골목길 담벼락에 예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꽃도 그리고, 새도 그렸습니다. 어린 왕자도 그리고 백설 공주도 그렸습니다. 싸움 소리는 사라지고,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쓰레기는 없어지고,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쓰러져가는 골목길에 생기를 주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이기적인 사랑을 할 것인가 이타적인 사랑을 할 것인가입니다. 개인적인 사랑에 머물 것인가 사회적인 사랑에 동참할 것인가입니다. 이기적인 사랑도 필요합니다. 나와 내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삶의 시작입니다. 이기적인 사랑도 못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가정도 있습니다. 원수처럼 지내는 이웃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타적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은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건 이타적인 사랑의 시작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생명의 쉼터가 됩니다. 이타적인 사랑은 공동체를 위한 오아시스입니다.

 

개인적인 사랑도 필요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추구하는 건 기쁨입니다. 산을 좋아하면 산엘 가고,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을 듣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면 더불어 사는 이웃과 운동하면 됩니다. 공부하고, 책 읽고, 여행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건이 안 돼서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의지가 약해서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사회적인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이사야 예언자가 꿈꾸었던 세상입니다. 사랑과 정의가 만나는 세상입니다. 사랑과 평화가 만나는 세상입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는 세상입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는 세상입니다. 그런 나라가 오면 사자도 여물을 먹고,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춤추고, 어린이와 호랑이가 손잡고 길을 걸어갑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헐벗고, 가장 굶주리고, 가장 아픈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 인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육체적인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인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자연을 정복해서가 아닙니다. 이타적인 사랑이 공동체를 만들었고, 사회적인 사랑이 공동체를 성장시켰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난한 이는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첫째는 믿음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크신 사랑으로 이 세상에 온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화의 산물이고,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믿음이 필요 없습니다.

두 번째는 행동입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헌혈증을 가져오면 국밥을 무료로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환경미화원에게 따뜻한 국수를 드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꽃동네는 어려운 이웃의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밤하늘은 별들이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의로움과 신심,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로그 일을 행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중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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