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9월 29일(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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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9-29 | 조회수1,24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9월 29일 주일 [(녹) 연중 제26주일 (이민의 날)] 한국 천주교회는 사도좌와 뜻을 같이하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민들에게 더욱 깊은 사목적 관심을 기울이고자 2001년부터 ‘이민의 날’을 지내고 있다. (주교회의 2000년 춘계 정기 총회). ‘세계 이민의 날’을 1월 (주님 공현 대축일 이후 주일) 에서 9월 마지막 주일로 이동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에 맞추어 ‘이민의 날’을 지내기로 하였다. (주교회의 2019년 춘계 정기 총회).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6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고, 탐욕스러운 부자는 외면하시며, 무분별한 자들의 방종을 그치게 하시고, 짓눌리는 이들을 정의롭게 보살피십니다. 언제나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받아 주실 것을 굳게 믿읍시다. 말씀의 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라고 한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드시며,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은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제1독서◎ <이제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말씀입니다. 6,1ㄱㄴ.4-7 이렇게 말씀하신다. 걱정 없이 사는 자들 마음 놓고 사는 자들!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노래를 불러 대고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화답송◎ 시편 146(145), 6ㄷ-7.8-9ㄱ.9ㄴㄷ-10ㄱㄴ(◎ 1ㄴ)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제2독서◎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계명을 지키십시오.> 말씀입니다. 6,11ㄱㄷ-16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추구하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나타나실 때까지 계명을 지키십시오.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환호송◎ 2코린 8,9 참조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복음입니다. 16,19-31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질러 말하였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하고 대답하자, 아브라함 할아버지!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이렇게 일렀다. 말을 듣지 않으면,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묵상◎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과 레베카가 어떻게 혼인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에게 많은 낙타와 온갖 선물을 주며 아들 이사악의 신붓감을 데려오라고 보냅니다. 종은 샘물 곁에서 자신의 낙타 열 마리와 자신에게 물을 길어 주는 소녀가 있다면 그 소녀가 주님께서 보내 주신 주인의 며느리라 여기겠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레베카가 나타나 낙타들과 종에게 물을 길어 줍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이고 이사악은 예수님이며 레베카는 교회에 비길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혼인함으로써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먼저 낙타 열 마리를 먹일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10’은 계명을 의미하고, 모든 계명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로마 13,10 참조) 사랑의 실천만이 하느님의 가족이 되고 하느님 나라의 상속권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비록 모세 오경과 예언서를 읽으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우물에 빠졌는데 안 구해 준다면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굶주린 라자로가 문 밖에 있는데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니 그는 스스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님을 드러내며 산 것입니다. 이와 달리 라자로는 개들에게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 핥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내어 줌입니다. 제1독서에서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우리 주위에 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걱정 없이 흥청댈 수 있다면 스스로 사랑이 없음을 드러내며 지옥을 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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