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02 조회수1,340 추천수12 반대(0)

가을입니다. 농부는 벼 베기를 할 겁니다. 지금은 기계로 벼 베기를 하지만 예전에는 손으로 했습니다. 저는 딱 두 번 벼 베기를 했습니다. 한번은 신학생 때입니다. 대전 교구인 동창 신학생의 집이 운산이었습니다. 추석 방학에 친구의 집에 가서 벼 베기를 했습니다. 요령이 있는 친구는 쉽고 빠르게 벼를 베었지만 저는 요령이 없어서 힘들고 어렵게 했습니다. 벼를 베려면 방향이 중요한데 저는 제 쪽으로 벼를 베다가 발 등을 다치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 번은 파주 적성의 본당 신부로 있을 때입니다. 공소 회장님의 댁에 벼 베기가 있었습니다. 기계로 일을 다 하였고, 한쪽 모서리에 조금 남겨 두었습니다. 저는 벼 베는 흉내만 내고 가을 들판에서 새참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가을의 추수는 즐거운 일입니다. 1년 농사가 열매 맺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쌀 미()는 팔()자가 두 번 들어간다고 합니다. 쌀 한 톨이 나오기 위해서 농부는 여든여덟 번 논에 가서 수고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면 농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한 톨의 밥알도 남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에즈라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페르시아 왕의 정책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섭리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비록 나라를 빼앗겼고, 유배지에서 생활하지만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함께 기도하고, 율법과 계명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공격으로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또다시 2000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금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건 강대국의 이해관계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신앙을 지켜왔고, 그 신앙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일반 기업은 파견에 앞서서 필요한 조치를 마련합니다. 조직을 정비하고, 숙소를 마련하고, 자금을 투입하고, 홍보하고, 시장조사를 합니다. 현지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인의 역사를 공부하고, 현지인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현지인의 마음을 얻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해외에서 기업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파견 방법은 달랐습니다. 조직도 없었고, 자금도 없었고, 현지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연구할 여력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요청하셨습니다. 첫째는 열정입니다. 작은 물방울이 커다란 바위에 구멍을 냅니다. 불가능한 것 같지만 열정에 시간이 더해지면 이루어집니다. 돈도, 지팡이도, 조직도 열정이 없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에 도착한 프랑스 외방 전교회 사제들은 돈도, 지팡이도, 조직도 없이 머나먼 길을 떠나 조선에 도착했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박해와 순교가 있었지만,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의 피와 땀 위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둘째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눈이 먼 소경을 치유하실 때도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백인 대장의 믿음과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이 세대가 믿음이 약하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조건을 따지는 믿음은 계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아무런 조건이 없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진 건 풍랑이 거세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믿음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토마 사도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

 

조직, 재정, 미래를 보면 미주 가톨릭 평화신문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종이 신문에 대한 수요도 점차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미주 한인 신앙 공동체를 위한 신문, 가톨릭교회를 소개하는 신문, 신앙의 진리를 전하는 신문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제게도 열정과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다면, 무기력하고 의욕이 사라진다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께 열정과 믿음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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