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성시간(聖時間)을 예수님과 함께 (10월 3일 목요일)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02 조회수1,126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매주 목요일은 많은 성당에서 성시간을 거행합니다. 저녁 미사후 성시간을 거행하니 참석하여 한 시간 동안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예수님을 위로합시다.



성시간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에서 죽을 고통을 당하시며 피땀을 흘리시기까지 마음으로부터 괴로워하신 것을 진실한 마음으로 묵상하며 한 시간 동안 행하는 특별한 신심이다. 묵상과 기도에 잠겨 그 혹독한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며 우리 주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고, 성부의 의노를 화해시키며, 죄인을 위하여 자비를 청하는 것이다.

성시간의 핵심은 우리 주 예수님께 동정과 사랑과 속죄와 사죄의 정을 일으키는데 있다
. 성시간은 말하자면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다.
성시간을 성시간답게 하는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 인내하는 법, 자신을 희생하는 법, 영원하신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충족시키는 법을 배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땀을 흘리신 게쎄마니의 그 장면은 실로 무섭고 고통스러운 장면이다. 그곳처럼 비침한! 그곳처럼 근심스러운 장면을 보여 주신 때가 없으시다.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을 깨달으시고, 나약함도 느끼시며 죽기까지 근심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한편으로 쓰고 어려운 수많은 고통이 그분을 찍어 누르는 것을 느끼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셨다는 생각에서 끝없는 고민의 강물이 덮쳐 오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다.
장차 받아야할 모든 형고가 그분의 눈앞에 확연히 나타나 떠나지 않고 괴로움을 더하였다. 그밖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신과 버림을 받으실 쓴 고통의 잔도 겹쳐왔다.

죄악!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는 가장 지겨운 고통이다. 거룩한 자에게 있어서 죄악을 보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악처럼 싫어하시는 것이 없다. 이렇게 싫어하시는 죄악을 한 사람의 것도 아니고 전 인류의 것을 맡아 지셨으니, 그분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게쎄마니에서 우리들의 모든 죄악을 자신의 죄처럼 맡아지시고 그로부터 오는 부끄러움을 당하시며 죄악의 바다 속에 파묻히셨다. 이것 때문에 전에 없는, 그리고 들어볼 수도 없었던 땀, 즉 피가 섞인 땀을 흘리시게 되셨던 것이다.
이렇게 근심을 당한 분은 누구이시며, 그렇게 사랑에 목말라 하신 분은 누구인가? 그와 같은 이 아무도 없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죄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 지게 하소서"(루가 22, 42; 마태 26,39; 마르 14,36).

그 시간에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셨는지를 배우기 위하여, 성녀 마르가리타의 말씀을 묵상하자.
"
나는 게쎄마니에서 인간의 모든 죄악을 맡아지고 하늘과 땅으로부터 아무런 위로 없이 온전히 버림을 받고 있을 때 어디에서보다도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 내가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당신 분노의 쓰디 쓴 쓸개의 잔을 먹이시며 당신 의노에 나를 희생시키셨다. 나의 아버지이신 것을 잊으신 듯이 내 위에 당신의 의분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의 대전에서 나는 대령되었다. 내가 그때 당한 고통의 지독함을 알아들을 피조물이 하나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벗들에게 이 흉악한 고민을 기억하며 당신의 쓰고 쓴 잔을 나누고 효성과 위안, 그리고 사랑의 예를 당신 곁에서 행하여 달라고 부탁하셨다. 이것이 바로 성시간이다.

성시간! 참으로 좋은 신심행위이다. 이 신심의 실천 방법을 1673년부터 1674년에 걸쳐 예수님 친히 당신의 영웅적인 충실한 종 성녀 마르가리타에게 가르쳐 주셨다. 성녀께서는 이 교훈을 들어신 후 의미 심장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미(美)가 있는 장중한 권고를 가르쳐 주셨다.
"내가 그리워하는 주님께서 찬란한 영광 중에 내게 보이셨다. 그분의 빛나는 오상은 다섯 개 태양같았고, 그 거룩한 몸에서는 사방에서 불길이 솟아났다. 그 중에도 제일 불가마 같은 그 흠숭하올 가슴에서 펄펄 타 나오며 가슴 속을 열어 사랑자체인 성심을 보여주셨다. 그 성심이 맹렬한 불길의 근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당신 사랑의 형언할 수 없는 신비! 우리 인간을 무한히 사랑하시고도 그 사랑의 대가로 배은(背恩)과 무시 밖에 받으신 것이 없는 사랑의 비결을 말씀해 주셨다. 무한한 사랑을 주시고 그 대신에 배은망덕을 받으신 것이 그분께는 제일 어려운 고통이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받은 고통 중에 제일 마음 아픈 것은 사람들이 내 사랑을 배은망덕으로 갚아 주는 것이다. 그들이 내 사랑을 보답한다면 나 그들을 위하여 받은 모든 형고를 가볍게 여길 것이고, 할 수 있다면 더  받겠다. 적어도 너는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배은망덕하는 죄를 보속함으로 내 마음을 기쁘게 해 다오' 하셨다"

성녀는 예수님께서 간청하시는 말씀을 들어시고 자신의 무능하고 무력한 모든 것을 보여 드리며,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성심을 가리키시며 
" 자 보아라, 여기에 모든 것이 다 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을 여기서 모두 얻고 만날 수 있다."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그분의 성심에서 어찌나 맹렬히 불이 솟아 나오는지, 성녀께서는 자신이 타 없어지는 줄로 아셨다한다.
"예수님께서 '자 보아라' 하실 때에 그분의 성심이 열리며 얼마나 뜨거운 불길이 솟아 나오는지, 나는 그 불에 타 없어지는 줄로 알았다."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더욱 마르가리타를 격려하시며, "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줄 것이니 아무 것도 무서워할 것 없다. 다만 내 말과 내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너를 준비시키는 모든 일에 정신만 차리고 있거라...
너는 무엇보다도 먼저 순명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영성체를 하여라. 또 매달 첫 금요일에 영성체를 하여라. 또 목요일 열한시 반부터 열두시 반까지 한 시간 동안 내가 게쎄마니에서  당한 그 죽을 근심 고통에 너를 참여케 할 것인데, 죽는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알 수 없는 고통이다. 내가 그때 아버지 하느님이신 성부님께 바친 겸손한 기도, 그때 당한 모든 고민에 함께 동참하기 위하여, 밤 열한시 반에 일어나 나와 같이 한 시간 동안 땅에 엎디어 죄인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하느님의 의노가 가라앉기 위하여 간구할 것이요, 나와 같이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느냐고 책망을 하게 되기까지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맛본 쓴 고통을 얼마라도 좀 가볍게 하기 위하여, 그 동안 너는 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하여라
" 하셨다.

이와 같이 성시간은 그리스도께서 임종의 고민을 당하신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같이 성부의 뜻을 흠숭하는 것이며, 자신의 죄과를 울어 보속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시간은 예수님께 대하여 사랑을 드리며 끓는 애정을 완전한 마음과 희생으로 혼연히 바치고, 모든 사람의 냉정, 무심, 죄악을 보속하는 것이다.

('성시간'/가톨릭출판사)







성모 신심의 심장 - 묵주기도 -

[사도직 신학](쉬넨스 추기경)



여느 기도와 마찬가지로 묵주의 기도도 단지 입으로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각 신비를 묵상하며 그 속에 까지 파고 들어가 마음을 고무시키느냐가 당연히 문제시된다.

  

여기서 잠깐 여러 교황성하께서 지칭했던 것처럼 "성모의 시편" 이라고 여겨왔던 묵주의 기도가 지니고 있는 숨은 내용을 찾아보고 영적 보화를 얻어내기로 하자.



우선 묵주의 기도를 하라는 것은 이 기도가 마음에 든다든가, 성모송으로 엮은 묵주알을 굴리는 것이 재미있다든가, 그 묵주 자체가 좋아서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자꾸 되풀이하는 이 기도가 단조롭고 싫증나는 것이며, 염할 때 어쩔 수 없이 분심이 생겨 짜증나는 것 등의 판단은 각자에 따라 다르다.



교회가 그 자녀들에게 이 기도를 열심히 하도록 권하는 이유는 두말 할 것 없이 천상 모후께서 매우 즐거워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성모께서 모든 것이 이 기도에 달려 있다는 말을 듣기 좋아하신다는 것만 알면 그만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교회 안에서는 묵주의 기도가 다른 어떤 기도보다도 훌륭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묵주의 기도에 대한 칙서를 열 다섯 번이나 공포하였다.


교황 비오 10세는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 군대 하나만 있어도 나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고 말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바로 이 군대가 되기 위해 있고, 여기서 묵주의 기도라는 이 무기야말로 총칼 구실을 한다.
  

또 교황 성 비오 10세는 그 성스러운 마음을 나타내는 다음 귀절을 남겼다.

"묵주의 기도만큼 아름답고 은총을 많이 내리게 하는 기도는 없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의 마음을 가장 흡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묵주의 기도를 사랑하고 매일 정성스럽게 바치십시오. 이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남겨 놓는 유언입니다."

이 말은 정말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무게있는 말이다. 이밖에도 교회의 증언과 성인들의 증언을 얼마든지 소개할 수 있지만, 이 선서문 풀이에 있어서는 묵주의 기도가 그저 선서문의 말대로 성심께 대한 신심의 연장이 된다는 것만 말하겠다.
  

묵주의 기도는 성령님과 상통하는 신비다. 그렇다. 적어도 묵주의 기도의 마지막 사실에까지 파고 들어가는 사람과 갖가지의 찬미 속에서도 일치성을 발견하는 사람이나, 굴리는 묵주알마다 공통되는 내용을 깨닫는 이에게는 묵주의 기도가 하나의 신비로 보인다.


그 때문에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라기보다는 "성모 마리아의 기도"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의 열쇠가 있다.
  

우리가 손가락으로 묵주알을 넘기면서 성모송을 바치면 성모께서는 이를 하느님만이 들을 수 있는 노래로 바꾸신다.
  

우리가 연주하는 악기나 다름없는 그런 음악적 변화가 생긴다. 이제 여기 축음기 판이 하나 있다고 하자. 축음기에 바늘을 달아서 축음기 판에 놓자마자 판이 골을 그저 빙빙 돈다. 귀머거리는 왜 저렇게 심심하게 돌고 있나 하겠지만, 듣는 사람은 자꾸 돌아가는 바늘 끝에서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는 몰라도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된다. 잠시 후면 음악 소리가 나고, 그 소리는 방에 가득차게 되는 것이다.



내가 성모 마리아와 일치해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가를 잠시 그려 보았다. 축음기 판에 바늘을 걸듯 내가 마음 속으로부터 성모 마리아와 일치하고 성모송을 외면,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 기도의 움직임을 직접 도맡아서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나를 위해 내 입장에서 그 기쁨의 "알렐루야"를, 그 정다운 "이루어지소서"를, 또 그 영광의 "아멘"을 노래하신다. 그리고 하늘은 그 기도에 귀를 기울인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 자기의 모든 감정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성심과 계속 상통하여 묵주의 기도에서 기념하는 신비 모두를 예수님과 성모님에게서 이룩하게 하는 노래다.



이는 우리에게 성모 영보의 환희 1단에서부터 성모대관의 영광 5단까지 성모께서 성령의 작용에 순응하신 생애 가운데 주요한 장면을 회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묵주의 기도는 천사가 가져온 메시지를 마리아께 전하여 이를 수락하기를 권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아주 훌륭한 역사의 시작이다. 우리는 성모님의 일생을 엮는 과정마다 성모께서 성령이 나타내시는 성의라면 그것이 기쁘거나(환희), 슬프거나(고통) 영광스럽거나(영광) 간에 다 용약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의 움직임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본다. 성모께서는 당신 안에서 행하시는 하느님의 작용이 밤이라도 낮과 같이, 죽음도 부활 때와 같이 나타내는 사랑이 신비에 언제나 일치되어 있다. 성모께서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고, 또 이 확신만 있으면 충분하다.



어떠한 신뢰라도 성모님의 신뢰만큼 완전할 수 없었다. 쇠못, 핏방울, 가시관, 십자가, 갈바리아, 이 모든 것으로 성령과 상통한다. 성모께서는 성령과 함께 성자의 헌신에 협력하시어 성자가 죽으신 후에도 충실하게 협력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 충실로 말미암아 마지막 순간, 즉 영원에로 들어가시는 순간에 영화로운 승천으로 관을 쓰시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모송을 바치며 묵주기도의 신비를 하나하나 묵상해 가는 동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마리아는 우리에게 성심과 상통하는 은혜를 얻어 주시고, 우리를 손으로 붙들 듯 성심께 인도해 주신다.



이렇게 묵주의 기도는 성령님과 성모 마리아와의 아가(雅歌 사랑의 노래- 구약)가 되기 때문에, 성령님께 대한 신심을 자꾸 일으키고 열렬하게 하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아마 없을 것이다. 조지 과이요(Georges Goyau)는 이 기도에 감추어진 화려함을 발견하고는 "묵주의 기도를 건성으로만 하고 그 진미를 모르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라고 할 만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기도가 입으로만 하는 것 같지만 모든 기도 중에 가장 영적이고,
이 기도가 폐쇄된 것 같지만 모든 기도 중에 가장 개방적이며,
이 기도가 초보적인 것 같지만 모든 기도 중에 가장 관상적이다.



이 기도로 성모님의 마음에 들게 할 줄 아는 자에게는 이 수수께끼가 절로 풀린다. 성모송마다 "영혼들을 풍성하게 하는 천상의 이슬이며, 성모 마리아에게 주어지는 정결한 사랑이며, 성모 마리아께 선사하는 타는 듯한 붉은 장미와 귀중한 보속과 신부와 신약으로 가득찬 그릇이 아닌가?" 이러고 보면 나는 교본에서 묵주의 기도에 대해 "숨을 쉬는 것이 사람의 몸에 필요하듯이, 묵주의 기도가 레지오 회합에 필요하다" 고, 왜 말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 마리아 2002년 5~6월 113호






우리의 수호천사

(하 안토니오 신부)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 구원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파견된 일꾼들이 아닙니까?"(히브 1.14)유산을 물려 받으면 적든 많든 누구나 다 기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유산 때문에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적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받은 유산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보관에 신경을 씁니다.믿는 이들에게 있어 


유산 중의 유산은 구원의 유산이며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큰 손해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유산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미리 아시고 이 구원의 유산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보존하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 각자에게 수호천사를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해야 할 선물입니까?

"" (시편 91,11-12).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뿌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의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

중세기의 유명한 미술가 프라 안젤리꼬가 그린 것 중에 죽은 사람이 천국에 가서 처음으로 자신의 수호천사를 만나 서로 포옹하며 그 천사와 함께 영원히 하느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담은 그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수호천사를 만나 그동안 수호천사의 보호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듣고 놀랐을 것이고 수호천사의 소리를 무시해버리고 귀기울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뉘우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교황 비오 11세는 "우리가 자신 아닌 다른 어려운 사람과 교제하는 데 있어 매일 자신과 상대방의 수호천사를 부른다면 더 쉽게 교제할 수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호천사와 늘 함께 한다면 수호천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힘없는 믿음이 아니라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바로 하느님과 함께 있으며 하느님의 힘으로 살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자기가 맡은 사람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은 지도자를 찾지 못하고 지도자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우리를 잘 인도하고 지도해 줄 수 있는 분, 또 지도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을 우리 곁에 항상 모시고 있는데 그가 바로 우리의 수호천사입니다. 바로 나의 수호천사가 항상 아버지 하느님을 모시고 그분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는 어둠 속을 헤매지도 않겠고 마음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아주 미소한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수호천사의 눈을 통해 하느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들의 첫 번째 의무가 바로 끊임없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수호천사를 모시고 있는 우리들도 결국에는 그 거룩함에로, 그 목적에로 그리고 그 생활로 인도될 것입니다.


(마리아 75호)




 


구원의 비밀

(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묵주기도의 비밀" / 교회인가 )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제자로 삼았던 복자 알베르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단순히 생각하거나 묵상하는 것이 1년 내내 금요일마다 빵과 물만으로 단식 생활을 하거나 매주 한 번씩 자신을 피가 날 때까지 편태를 하거나 매일 시편집을 전부 바치는 것보다 그리스도인에게 더 많은 공로가 된다는 것을 계시로 알았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구세주의 온 생애와 수난을 기억하는 거룩한 묵주기도로 얻는 공로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어느 날 성모님께서는 미사 후에 복자 알마노에게 "미사는 가장 생생하게 사랑하올 우리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고 미사 다음으로는 묵주기도보다 더 좋은 신심이나 더 큰 공로가 되는 신심이 있을 수 없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에 대한 기억이요, 표현과 같은 것으로 둘째가는 거룩한 신심이다"라고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복자 알라노에게 이런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나의 묵주기도를 바칠 때 벌써 수많은 은사를 붙여주었지만 대죄가 없는 상태에서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 바치는 사람들에게는 다섯 단을 바칠 때마다 더 많은 은사를 덤으로 보태줄 것이라는 것을 알아라. 이렇게 하면서 묵상과 더불어 거룩한 묵주기도의 신심을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또 나는 그에게 죽을 때에 자기 모든 죄의 벌과 허물에 대한 전적인 용서를 얻어 줄 것이다. 이것이 네가 믿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고 믿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하늘의 왕의 어머니이고 은총이 가득하신 자라고 불리는만큼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은총을 가득히 입은 내가 그것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자유로이 베풀어준다."


복자 알라노

복자 알라노는 직접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내가 미사를 드리고 있던 어느 날, 주님께서 거룩한 묵주기도를 전파하도록 독촉하시며 성체 안에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어떻게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느냐?' 나는 '주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하고 대답했지만 겁에 질려 있었다. 주님께서는 '너는 네 잘못으로 전에도 한 번 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대답하시면서 '나는 네가 죄로 말미암아 성부께서 상처받으시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지금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기를 기꺼이 원하겠다. 그런데 너는 내 어머니의 묵주기도를 전파하는데 요긴한 모든 학문과 지식을 갖추었으면서도 그렇게 실행치 않으므로 너는 지금 나를 십자가에 다시 못박고 있다. 그러나 네가 이 방법을 실천에 옮긴다면 너는 많은 영혼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치고 그들을 죄로부터 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실행치 않는다면 너는 그들이 범하는 죄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무서운 책망은 복자 알라노에게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전파할 결심을 하게 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 어느 날 다시 그에게 거룩한 묵주기도를 더 열심히 전파하도록 격려하시면서 "너는 젊었을 때 큰 죄인이었으나 나는 너를 위해 기도했고 내 아들로부터 너에게 회개의 은총을 얻어 주었다. 회개한 죄인들은 내게 영광이 되기 때문에 나는 네가 내 묵주기도를 더욱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했고 너를 구원하기 위해 나는 온갖 고통을 즐겨 감수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미의 화관

복자 알라노는 하느님의 소리인 이 신심을 하느님 백성의 소리로 쇄신시킨 이후로는 이것을 로사리오라고 불렀습니다. 로사리오라는 말은 '장미화관'을 의미하는데 사람들이 제대로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칠 때마다 천국의 흰 장미꽃 백 쉰 세송이와 붉은 장미꽃 열 여섯송이로 된 화관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머리에 씌워드리는 것입니다. 천상의 꽃이 된 이 장미꽃들은 결코 시들거나 그 우아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로사리오라는 명칭에 대해 당신의 확고한 승인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성모님은 여러 사람들에게 그들이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아름다운 장미를 당신께 드리는 것이며 묵주기도를 온전히 바칠 때는 장미꽃 화관을 드리는 것이라고 밝혀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회의 유명한 알퐁소 로드리게 수사는 묵주기도를 어떻게나 열렬하게 드렸던지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자기 입에서 붉은 장미꽃이 그리고 성모송을 드릴 때마다 하얀 장미꽃이 나오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의 그 아름다움과 향기는 똑같았지만 그 빛깔만은 달랐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 관한 전기에서는 매일 식사 전에 성모님께 화관을 드리는 좋은 습관을 가진 젊은 탁발 수도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어떠한 사정에서 그랬는지 묵주기도를 미처 드리지 못했는데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상에게 식탁에 앉기 전에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허락을 청하였고 마침내 자기 방에 들어가서 기도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방에 들어간 지 오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다른 수사를 그를 시켜 불러오도록 했습니다. 그를 데리러 간 수사가 방문을 열어보니 그 수사는 성모님과 두 천사를 대면하면서 천상의 빛에 환히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사의 입에서는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아름다운 장미꽃이  나오고 있었고 두 천사는 그 장미꽃을 받아 성모님의 머리 위에 얹고 있었는데 성모님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 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간 수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수사가 또 찾아 나섰는데 그도 역시 똑같이 그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성모님은 묵주기도가 다 끝날 때까지 떠나지 않으시고 그곳에 계셨습니다.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돌아가신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를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빌어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