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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겸손)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03 조회수1,174 추천수3 반대(0) 신고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

겸손

찬미예수님

잘 계셨지요?

지난 월요일에

유럽여행을 마치고 왔습니다.

평일미사에 참석했던 분들은 인사했지만

주일미사에 나오셨던 분들은 2주 만이죠?

열흘 동안 성지 두 군데를 다녀왔는데

일반사람들은 가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알프스의

깊고 놓은 산속에 있어서

차도 드나들기 힘들고 걷기도 힘들죠,

제가 무엇으로 다녀왔을까요?

한국말로는 오토바이, 서양말로는 바이크.

스위스에서 빌려서 남부 프랑스에서

시작이 되서 올라갔습니다.

혼자 간 것이 아니라 9명을 데리고 갔는데,

고생들 많이 했죠.

바이크 타는 실력이 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 보조를 맞추어야했고,

산도 우리 한계령은 산도 아냐,

동산이고, 커브길도 한국에서 보는

커브길은 커브길도 아니에요.

이런 험한 산에 올라가니 구름이 있지,

날씨도 수시로 바뀌지.

그런데 그렇게 고생해서 성지에 갔더니,

하늘이 그렇게 맑고 깨끗할 수 없어요.

올라가긴 힘들었지만 내려오기도 싫었어요.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저절로 묵상이 많이 되요.

오늘 입당성가 !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 주님이 지었네!’ 부르셨죠?

창조주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알프스 산꼭대기예요.

아무튼 여러분 기도 덕에 쉽지는

않았지만 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좀 판단을 잘못했던 것이,

그런 높은 산에는 산악용바이크를 타야하는데,

그냥 한국에서 쓰던 바이크를 빌렸더니

아주 힘들었죠..

열흘 동안 위험한 고비 고비, 수천 길

낭떠러지에도 힐링은 어디에서 왔는가?

매일 아침에 미사를 드렸어요.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미사하고

성체 성혈을 영하고 짧게 강론도 하고.

자칫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어려운

여행하다보면 마음이 갈라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마음을 다잡고 추스르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던 힘은

바로 매일미사였죠.

그 높은 곳, 아마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다 온 게 아닌가 생각해요.

오늘 독서와 복음에 무슨 얘기가 나왔어요?

오늘 말씀의 핵심은 겸손이에요.

1독서에는 뭐라 나옵니까?

겸손해라. 그러면 주님의 은총을 받으리라

오늘 복음에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하면서 잔칫집에 초대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시죠.

잔칫집에 어떤 사람이 가서

맨 윗자리에 앉았어요.

자기자리인 줄 알고.

그런데 그 사람보다 더욱 높은 사람이

왔을 때 주인이 와서, ‘여보게 그 자리

임자 있어. 저기 밑에 빈 자리 가게.‘

그 사람은 내려가면서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겠어요?

애초 맨 밑자리에 앉아있으면

주인이 와 여기 당신이 앉을 자리 아냐,

위로 올라가.’

그러면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고 영광스럽게 보겠느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며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세상에는 높고 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하느님은 당신의

오묘함을 누구에게 보이신다구요?

잘난 사람한테만 보이셨습니까?

똑똑한 사람한테만 보이신다는 얘깁니까?

겸손한 사람에게만 드러내신다는 거죠.

겸손을 라틴어

후밀리따스(humilitatem)이라 합니다.)

후밀리따스는 땅, 흙이라는

후무수(humus)’에서 나왔어요.

땅은 모든 것을 다 받아주고 품어줍니다.

어떤 것도 밀어내지 않는 것이 땅입니다.

하다못해 시체도 받아줘요.

겸손의 핵심은 땅처럼

모든 것을 품는 겁입니다.

제가 여러 번 비싼 땅과 귀한 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드렸죠?

비싼 영혼과 귀한 영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드렸죠?

비싼 땅의 조건을 뭐라 그랬습니까?

사람들에게 많이 밟혀야 됩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밟히는 땅일수록

집값이 올라가요.

비싼 영혼이 되려면 어떻게 된다고 해요?

사람들에게 많이 밟힐 각오해야합니다.

살다보면 별것도 아닌 인간이

나를 밟으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냥 밟으라 하세요.

나는 밟힐수록 비싼 영혼이 될 것이다.

또 귀한 땅은 어떤 땅 이라고 해요?

더러운 것 많이 끌어들인 땅 일수록

귀한 땅이 되고 귀한 열매가 열려요

뒤뜰에 음식찌꺼기 넣으면 거름으로 변하고,

그 땅엔 무얼 심어도 열매가 알차요.

귀한 영혼이 되려면 더러운 것

많이 받아들일 생각을 해야 되요

비싼 영혼과 귀한 영혼은

비싼 땅과 귀한 땅에서 나와요.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겸손 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의 삶을

또 세 가지로 어떻게 표현합니까?

크리스챤 영성 3가지,

첫 번째 바보의 삶이다

두 번째 걸레의 삶이다.

세 번째 연탄불의 삶이다.

예수님은 바보처럼 사셨어요.

예수님은 연탄처럼 시커먼 놈을

불 붙이기 위해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셨어요.

예수님은 더러운 것 닦아 주는

존재 이유인 걸레처럼 당신의 보혈로

세상의 더러운 것 다 닦아주고 사셨어요.

그래서 크리스챤 영성은 바보가

되는 것으로부터, 걸레가 되는 것부터,

그리고 연탄불이 되어 밑으로

내려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됩니다.

특별히 교회 봉사자들 간부들은

두고두고 명심하셔야 될 겁니다.

바로 이렇게 바보가 되고 걸레가 되고

연탄불이 될 때 이것이

바로 겸손의 삶입니다.

노자라는 중국의 사상가는

물을 최고의 선으로 보았습니다.

왜냐? 물은 일단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물은 절대로 위로 올라가려 하지 않고

기회만 생기면 아래로

내려가려 애를 씁니다.

그리고 물은 두 번째로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네모난 통에 들어가면 네모로 변하고,

동그란 것에 들어가면 동그랗게 변합니다.

세모난 통에 물을 넣어도

물은 앙탈부리지 않고,

소리지르지 않고 그대로 순응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물은 만물을 키우고

생에 기운을 주는 것이 바로 물입니다.

영성신학에서 물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물은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첫 번째 낙수,

유수, 담수, 호수, 용수, 정수, 약수,

생수, 그리고 천수가 있습니다.

하나씩 설명하는 데도 몇 시간 걸립니다.

어두운 의미에서 물은 하수, 침수, 누수,

한수, 건수, 오염수, 홍수, 해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들이 이 물 중에서

오늘 묵상해야 될 것은 담수입니다.

담수가 뭐지요?

여러 계곡의 골짜기의 물이 모여서

모아지는 걸 담수라 해요.

물론 이 담수라고 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 물들이 서로 만나는 겁니다.

그래서 큰 호수를 이루어요.

마치 우리 공동체와 똑같아요.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모습도

다른 사람들이 여러 계곡에서 모여

서운동성당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담수와 같지요.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물에 무언가 떨어지면 그것을 향해

상반된 두 힘이 작용하죠.

물체를 밑으로 끌어 내리려고

하는 침수력이 첫 번째요.

반대로 그 물체를 어떻게 쓰는지

위로 뜨게 하려고 부력이 존재합니다.

물체가 물에 떨어져지면

두 힘은 열심히 싸우죠.

침수력이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물체는 꼬르륵 빠질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부력이 이기면 어떤 물체든지 떠요.

늘 떠있어요.

영성신학에서 이 부력,

물체를 뜨게 하는 힘은 상대를

띄워주는 것, 칭찬, 격려입니다.

한마디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른 사람을 높이 들어 올리는 말인가?

나에게서 나오는 부력의 힘이

나와 공동체 사람들을 띄워주는가?

반대로 침수력만 가지고

살아가지는 하는가?

상대를 헐뜯고 비평하고 험담해서

어떻게든 끌어내리려는 못된 악습은 없는가?

겸손한 자는 공동체 안에서

부력의 역할을 충실히 합니다.

그러나 어둠에 속한 자는 죽을 때까지

그 입에서 남 칭찬하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입만 열면 뒷담, 험담, 헐뜯습니다.

벼농사 지어 보신 분들이 있습니까?

볍씨를 파종하기 전에

먼저 소금물에 담그죠?

싹을 띄울 수 있는 좋은 볍씨는 스르륵

가라앉아요. 생명이 있는 씨앗이예요.

그런데 쓸모없는 쭉정이 볍씨는

동동 떠다녀요.

사람도 가벼운 사람, 다시 말하면

교만한 사람은 위로 뜨게 마련이고,

무거운 사람, 평정심이 있고 겸손한 사람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아요.

겸손이야말로 모든 덕의 어머니이고

하느님 앞에 첫째가는 계명입니다.

하느님은 낮은 곳에 계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는

바로 겸손의 신비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큰 바보였듯이

우리들은 작은 바보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합시다.

예수님이 불붙은 연탄이 되어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셨듯이,

누구 위에 올라가려 하지 말고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 성령의 불로

불기없는 그 사람을 붙이도록 합시다.

예수님의 걸레가 되어 당신의 보혈로

세상의 더러운 것 다 닦아주고 계시듯이,

내 자신도 작은 걸레가 되어

내 주변의 더러운 것 닦아주는

겸손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기도하도록 애씁시다. 아멘

2019년 연중 제22주일(9/1)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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