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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7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05 조회수1,582 추천수13 반대(0)

제가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입니다. 당시에 일본의 가전제품은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저도 입학 선물로 일본의 소형 녹음기를 받았습니다. 작고 아담한 녹음기는 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가전제품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일본인의 장인정신, 성실함,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만들어낸 성공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철옹성 같았던 일본의 가전제품은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애플, 삼성, 구글,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실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장인정신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서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은 스마트 폰을 기점으로 한 디지털 환경의 변화입니다. 애플, 삼성, 구글, 페이스북은 그런 환경에 적응해서 디지털 혁명의 대열에 함께 했습니다.

 

100년 전 중국과 한국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국력과 한국의 문화가 당시 세계의 수준에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석기 시대는 청동기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청동기 시대는 철기 시대를 견디지 못한 것처럼 철기 시대의 문명은 증기기관으로 발전한 기계문명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일본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였고, 새로운 산업혁명이라는 배에 탑승했습니다. 마차는 자동차의 등장으로 자리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증기기관의 기계문명은 디지털로 무장한 4차 산업혁명에 자리를 내주리라 예상됩니다. 변화되는 시대의 상황을 직시해야 할 겁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은 박해와 순교를 견디어낸 제자들의 헌신적인 선교로 예루살렘을 벗어나 중동,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로 전해졌고, 동방의 조선에도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과 문화를 받아들였고, 견고한 교계제도와 교리체계를 확립하였습니다. 마을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고, 교회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었고, 신앙이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타성에 젖게 되었고,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교계제도는 질서를 유지하는 좋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현장의 소리를 경청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제도입니다. 시민혁명과 민주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교리와 신학을 따분하게 여겼습니다. 여행을 자유롭게 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와 종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진화론과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지성이 모든 것을 풀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사제 성소의 감소가 급격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교회를 매각하기도 했고, 교회가 문화시설로 대체되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어떨까요?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교회는 박해의 긴 터널을 지났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고,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섰습니다. 권위와 독재를 비판하였고, 민주화를 외치는 이들의 소리를 경청했습니다. 70년대 백만이었던 신자는 10년마다 백만 명씩 늘어났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500만 명의 신자가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전구와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함께 하였습니다. 성직자들은 겸손하지만,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박해를 견디어낸 신자들은 신앙에 충실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교회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성당을 신축하고 대형화된 교회는 신앙을 키우는 데 소홀했습니다. 핵가족화되면서, 성공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서 가정에서의 기도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사제들은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권위와 독선은 공동체에 큰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신앙은 삶의 중심이 되기보다는 삶의 한 부분으로 전락했습니다. 사제가 마음에 안 들면 성당에 나가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에 마음이 쏠리면 성당에 나가지 않습니다. 주일미사 참례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30% 미만의 신자들만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 아픈 이, 외로운 이의 목소리가 성당에서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회가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제들의 성찰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사제가 걸었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권위와 독선을 버리고 겸손과 온유함을 입어야 합니다. 사제의 말과 강론은 영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사제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성체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사제는 그렇게 살라고 부르심을 받았고, 그렇게 살겠다고 서약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성찰입니다. 무엇보다 가정에서의 기도가 살아나야 합니다. 신앙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재물을 땅에 쌓기보다는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교회의 서적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뜨거운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묵주를 든 손에는 악의 세력이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과 순교자들이 보여준 영성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바로 그런 걸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이처럼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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