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도신경 아홉번째/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⑴ (마태 27.23-3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08 조회수1,798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사도신경 아홉번째날(2019.10.08)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마태복음 2723- 31)

23 빌라도가 다시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하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24 빌라도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25 그러자 온 백성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26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27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28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29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 30 또 그분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31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아멘

 

지금 마음속으로 각자 예수를 믿음에 정의를 한번 내려 보세요 도대체 우리는 뭘 믿는 것이며 어떤 유익을 위해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 정의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은 수많은 이단들에 출현을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어요 성경은 그러한 이단들에 가르침을 다른 복음이라고 명쾌하게 정리를 해 줍니다 예수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다른 복음이라는 거에요.

초대 교회때는 믿음에다 율법주의를 보탠 다른 복음이 있었고 그 이후로 수많은 다른 복음을 가진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하느님 교회에 벽을 뚫고 들어왔어요 믿음에 안식일 준수를 보탠 안식교가 출현하기도 했고 하느님의 교회라는 집단은 안식일 뿐만 아니라 과월절까지도 여전히 지켜야 한다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원파에서는 믿음과 거듭남을 구별해서 믿음에 거듭남을 보태야 온전히 구원이 된다고 가르치기도 하고 다락방에서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함으로 거기에 예수 영접이 보태져야 한다고도 합니다 그 모든 이단들이 전부 예수 믿는 믿음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서 자신들에 왜곡된 교리를 목숨바쳐 주장하고 피력하고 있는 거에요

예수를 믿는 믿음 그것이 정확하게 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거죠 그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거고 그런 연유로 자꾸 믿음에다가 뭔가를 보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대해서 확실히 정리를 하고 계시냐고요 우리는 과연 예수 믿는 믿음을 어떻게 제대로 정의를 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여러분 자신 있으십니까?

만일 우리가 옳게 가고 있다고 하는 이 확신을 갖고 예수님 앞에 섰는데 예수님께서 나 더러 주님 주님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니 불법을 행하던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이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성경은 분명 참 믿음이 무엇이며 잘못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야기 하고 있어요

루가복음 828절로 갑니다 28 그가 예수님을 보고 고함을 지르고서 그분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말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이거 누가 한 말이에요? 마귀가 한 말입니다. 게리사 狂人속에 들어가 있던 마귀가 예수님께 한 말인데 그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그래요 그 마귀는 하느님을 가리켜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고 했고 여기에서 지극히 높다라는 것은 최상급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

야고보서 219절 보세요 19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야고보는 마귀들도 하느님이 한분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요 그러니까 마귀들이 적어도 그리스도교 내에 삼신론 자들이나 다신론 자들보다 훨씬 정확하게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거에요. 뿐만 아니라 마귀들은 이러한 지식적인 믿음에 감정적인 믿음까지 갖고 있어요 야고보가 말하기를 마귀들이 떤다는 것은 감정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마귀들은 하느님이 한분이신 것도 믿고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믿으며 그것으로 인해서 감정적으로 떨기도 한다는 것인데 그만하면 훌륭한 믿음 아닙니까? 그러면 이제 그러한 훌륭한 믿음을 가진 마귀들에게 우리 교회가 세례를 줘도 괜찮나요 마귀들에게 세례 줄까요? 우리들 중에는 귀신보다 못한 믿음을 갖고도 전부 세례 받고 직분도 받고 예배도 하고 하지 않습니까?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오늘날 교회가 마귀와 크게 다른 점이 있어요? 오히려 못한 것 같아요 적어도 성도는 그러한 마귀들보다는 명확하고 명료하게 예수 믿는 믿음에 관해서 정의를 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되심과 그 분에 하느님 아들 되심에 대한 그 지식은 기본적으로 전제가 되는 거에요 그건 마귀들도 아는 거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건 그러한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에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는 제사를 영 단번에 십자가에서 치르시고 우리를 그 죄에서 건져 내셨다 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에요 그냥 십자가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이 되었다 라는 것을 믿는 거에요. 그러나 그걸 믿는 믿음은 굉장히 많은 것을 함유하고 있어요 거기에다가 율법지킴이나 절기 지킴 거듭남이나 예수영접 혹은 의인됨 등이 보태져야 구원이 완성이 된다는 그런 이단사설들에 여러분은 절대 속으시면 안되요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십자가 안에서 모두다 해결이 된 거에요 십자가는 뭔가 불안정한 것이고 거기에 자꾸 뭔가가 보태져야 된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들은 전부 가짭니다 전부 이단이에요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 그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선물로 받아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만 지시면 되는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만 지시면 되는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수난까지 받아야 되요? 어느날 성인으로 그냥 뚝 떨어져서 십자가 높이 들고 얘들아 나 너희들의 죄를 위해서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는다 잘봐 나 하느님 이거던 그런데 육신을 입고 이땅에 왔어 너희들 위해서 내가 죽을꺼야 그리고 콱 죽어 버리면 그걸로 끝나는거 아니에요? 왜 예수님이 아기로 오셔서 태어나는 날부터 시작하여 죽는 날까지 수난을 당하다 가야 되요 십자가만으로는 뭔가 부족합니까? 이 질문이 바로 오늘의 키 포인트에요.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다라는 대목은 단순히 예수님에 십자가 고난만을 가리키는게 아니에요 예수님에 고난, 그러면 단순히 십자가만 떠올리는데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다라는 대목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포함하지만 십자가만을 이야기 하는 건 아닙니다 십자가를 포함한 예수님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말이에요

한마디로 예수님의 전 생애는 고난의 생애였다라는 것을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다라는 그 어구가 함축하여 설명하는 거에요 여러분 그 앞 어구가 뭐였어요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그러면 고 뒷 어구는 뭐에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자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죽음 중간에는 뭐가 들어가 있어야 돼요? 예수님의 전생애가 들어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신앙고백에서 그 예수님의 전 생애를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다로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전생애 탄생과 사망 그 사이에 있는 전 생애가 바로 고난이였다는 거고 그 고난은 본디오 빌라도로 상징된 어떤 세력에 의한 고난이였다라는 것을 함축하여 설명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다에서의 그 본시오 빌라도와 그 고난의 개념은 한 개인이나 그 개인에 의해서 저질러진 어떤 특정한 사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본시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에요 빌라도는 오히려 예수님에게서 그 어떤 죄도 찾을 수가 없다고 예수님을 세번이나 놓아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죽이라고 한거에요 그렇다면 사도신경을 좀 고쳐야 하지 않아요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다가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으시다 혹은 온 세상에게 고난을 받으시다로 고쳐야 되는거 아닙니까? 여기서 빌라도는 당시 세상을 다스리고 있던 로마 황재의 대리인으로 이 세상 권세잡은 자의 대표로 등장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본시오 빌라도는 세상권세잡은 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에요 더 나아가서 본시오 빌라도는 세상 권세 잡은 자의 세력 전체를 가리키는 거에요 나를 포함한 세력 전체.

그러니까 본시오 빌라도의 이름 대신에 내 이름이 거기에 들어가는 거에요 여러분 그래서 라틴어 사도신경이나 영어 사도신경은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다를 본시오 빌라도 아래에서 언더 폰티우스 필라투스라고 기록을 하고 있어요 언더에요 언더 그러니까 그 부분을 정확히 해석을 하면 본시오 빌라도가 예수님의 수난의 주체가 아니라 그 예수님의 수난의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그 중간에 본시오 빌라도가 대리인으로 서 있었고 그 아래에서 수난이 주어졌다라는 뜻인 거에요

쉬운 말로 본시오 빌라도는 당시에 법정에서의 최종 선고자 즉 판사로서의 자격과 기능을 가진 총독이라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유죄를 선고하는 세상에 대표자로서 예수님의 수난에 등장하는 인물인 것이지 그가 독립적으로 예수님 수난에 주체자의 자격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발견된 그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빌라도가 이 일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정확하게 나와요 빌라도는 굉장히 크게 회개를 했습니다 예수 죽인 것을,

어떤 면에 있어서 본시오 빌라도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에요 괜히 고때에 고 당시에 총독으로 있는 바람에 그에 이름이 2,000년이 넘게 전세계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오명으로 불리고 있는 거에요 사도신경을 고백 할때마다 그 사람 이름이 나와, 고때 총독이였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울러 그 대목에서의 본시오 빌라도의 역할은 그 실제했던 본시오 빌라도에 의해서 예수가 고난을 받았다라는 사실에 기인하여 예수님에 고난과 십자가에 역사성 그 실제성을 확증하는 용도로 신앙고백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거에요 그는 실제 고 기간동안에 로마의 총독이였거든요

그런데 그의 이름이 사도신경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본시오 빌라도를 생각할때 예수를 죽인 천인공로할 나쁜놈으로 보는게 아니라 예수님을 유죄인으로 선고를 해버린 이 세상 권세의 총대표로 보아야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하느님에 영광이 아닌 나라는 존재에 영광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가던 나를 포함한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자로 보아야 되는 거에요 내가 바로 본시오 빌라도의 자리에 있었던 자에요

오히려 유죄선고를 받아야 할 죄인들이 마치 자기들이 무슨 대단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정말 행복할 수 있다는 그 복음을 전해주러 오신 예수님에게 유죄선고를 내려버린 거에요 고거를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로 짧게 요약을 하여 축약을 하여 표현을 한 것 뿐이에요 예수야 니가 틀렸다 내가 그랬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유죄선고를 받아 마땅한 그 죄인들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유죄선고를 받아버리심으로 그들을 구원해 내시는 구원에 대하드라마를 아주 작은 그림으로 요약하고 있는 것이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인 거에요

 

다시 왜 주님은 십자가만 지시면 되는데 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고난을 받다 가셔야 했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에 까지 그분이 세상 권세잡은 자의 세력에 의해 고난을 받으셨다라는 것을 굳이 넣어서 고백을 해야 되는가? 그냥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십자가에게 못박혀 죽으시고로 이어져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왜 그 짧은 신앙고백속에 그분의 고난의 삶이 꼭 들어가야 되는 것인가? 오늘 그 질문들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가져야지요 그래야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라는 고백을 할때 그 고백이 주문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거에요 아울러 그러한 해답과 더불어 왜 성경은 우리 성도들도 그 예수님에 고난에 참여하여야 한다라고 하기도 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도 하기도 하며 날마다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정리를 잘해야 돼요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 사건이 어떻게 나에게 영적 현실이 되어야 하는가에 까지 가야 오늘 가치 있는 것이지 예수님이 그렇게 고난을 받으셨대 라는 그런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사실 확인만이 목적이 된다면 그건 정말 가치 없는 공부가 되는 거에요 성경은 우리가 믿음에 내용으로 고백을 하고 있는 그 예수의 고난을 우리에게로 까지 연결을 시켜 적용하고 있단 말이에요 예수님께서도 수시로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이야기를 하세요 그리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세상이 이리처럼 너희들을 공격할 것이다 이렇게 반복하여 말씀을 하셨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라고 신앙고백을 할때 그 속에 예수의 을 쫓아 함께 그분에 고난에 참여해야 하는 우리 성도에 고난에 필연성까지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 거에요 왜냐면 예수님에 삶이 고난에 삶이였다 라는 것이 확실한 사실인 만큼 우리에게 약속된 고난 또한 확실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라는 그 고백을 할때 나도 분명히 그렇게 고난을 받게 될 거야를 함께 고백하는 거에요 우리의 신앙고백 속에 나의 고난에 필연성이 들어가있단 말입니다 재수없는 말 갖지 않으세요? 그런데 신앙고백 속에 그 고백이 분명히 들어가 있어요 우리가 지금 너무 서둘러 결론으로 건너 뛰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어떻게 우리의 예수믿는 믿음안에 우리의 고난이 그 내용으로 들어가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왜 꼭 십자가여야 하는가 그건 당시 십자가형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가 받는 참형이라는 율법에 근거한 확실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서 죽으신 그 예수님의 죽음을 확증하고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거에요 이분은 분명히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이다 라는 것을 교회와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거에요 거기에 빌라도가 선고용 엑스트라로 이 세상 권세잡은 자의 대리인으로 잠깐 등장하는 거에요

(신명기 2122-23) 22 “죽을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을 나무에 매달 경우, 23 그 주검을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아 두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날로 묻어야 한다.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땅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율법에 적힌 요 부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거에요 물론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예수님의 모든 고난의 절정이요 결정체에요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에 삶은 십자가와 채찍에서만 나타난게 아니에요 예수님은 천지 만물에 창조주세요 그런데 그분이 인간에 제한된 육신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셨죠? 성육신 사건 자체가 예수님에 고난에 시작이에요 천지를 만드신 하느님이 자기가 창조한 자들 심지어 타락까지 해버린 벌레만도 못한 자들과 함께 33년을 지내셨어요 그런데 그 벌레들이 자기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걸핏하면 낭떨어지로 데리고 가서 죽이려고 하고 걸핏하면 모함을 하며 밥먹듯 배신을 했어요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게다가 예수님은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 나셨어요 호적을 하러 베들레헴에 올라갔는데 변변한 여관하나 구하지 못해서 짐승이 사는 헛간에서 잠을 잘 정도였어요 그리고는 인생에 시작은 구유에서 시작하셨습니다 심지어 정결예식을 행할 때 1년된 어린양을 번죄로 드리고 비둘기를 속죄제로 드릴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 그거는 레위기에 율법이였거든요 그어린 비둘기한쌍으로 정결예식을 감당할 정도로 가난했어요 그분은 공생애기간에도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라고 말씀 하셨어요 예수님은 평생 자기 소유의 집이나 재산을 한번도 가져본 일이 없는 거에요 그분은 가족들에게도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고 3년간 동고동락을 했던 제자에 의해 팔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당신을 끝까지 쫓겠다는 나머지 제자들도 모두 배신을 하고 도망갔으며 아무죄도 없이 매를 맞으셨고 로마 군사들은 예수님을 벌거벗기고 홍포를 입힌 상태에서 빛을 받으면 금관에 색을 낸다는 가시관을 씌웠어요 손에다가는 황제의 홀을 빗댄 갈대를 쥐어 줬구요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밷었고 그분의 눈을 가린 후에 빰을 때린 후에 누가 때렸는지 알아 맞춰보라 고 조롱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앞에서 엉터리 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결국 십자가에 메달아 죽여버렸어요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속죄에서 대신 짊어지신 우리 죄인들의 죄에 대한 중보적 죄의식 또한 평생 가지고 사셨다는 거에요 예수님의 최대의 고난은 하느님과 끊어지는 영적인 수난이였어요 영원속에서 단 한번도 끊어진 적이 없는 예수님과 하느님이 우리의 죄때문에 끊어짐을 경험한 거에요 성경도 예수님에 육체적 고난에 대해서는 그리 세밀하게 묘사를 하지 않아요 -계속-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