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0월 8일(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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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10-08 | 조회수92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0월 8일 화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말씀의초대 주님께서는 요나 예언자가 전한 말을 듣고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 말씀을 듣는 것 한 가지뿐이라고 하신다.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셨다.>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이렇게 선포하였다.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화답송◎ 시편 130(129), 1-2.3-4.7ㄴㄷ-8(◎ 3)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복음환호송◎ 루카 11,28 참조 이들은 행복하여라.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동생이 있었는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을 방문하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마르타가 바빴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르타 입장에서는 시중드는 일은 도와주지 않으면서 예수님 발치에 앉아만 있는 마리아가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불평하는 마르타에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고 하십니다.이 대목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마르타는 활동을 의미하고 마리아는 관상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관상이 활동보다 우선해야 한다거나, 마르타는 노동을 뜻하고 마리아는 기도를 뜻하기에 노동보다는 기도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르타나 마리아의 마음이 서로 달랐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르타 역시 예수님을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분을 접대하는 것보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순간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마음 안에 마르타와 마리아의 두 가지 모습을 늘 같이 지니고 살아갑니다. 주님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그분과 일치하여 살고 싶은 마음과 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구가 함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가운데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이 둘을 내 삶 안에 어떻게 조화시킬까 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 생활에 대한 영감을 얻고, 우리 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몫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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