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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0.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08 조회수1,710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제1독서 요나 3,1-10

1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복음 루카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먼 곳에 있는 높은 산이 아니라

신발 안에 있는 작은 모래 한 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 역시

 며칠 전에 비슷한 경험을 하나 했지요.
아침 운동으로 자전거를 타는데

신발 안에 작은 모래가 들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멈추고

신발을 털기가 귀찮아서 신발 안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모래알을

피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쉬지 않고 1시간 30분을 자전거로

달리는 것보다 또 높은 언덕을 헐떡이며

오르는 것보다도 이 모래알이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결국,

 자전거를 세워서 신발을 탈탈

털 수밖에 없었지요. 웬만해서

멈추지 않았던 제가 그 작은

모래알 때문에 멈춘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이나 시련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커다란

고통과 시련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고 지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통이나 시련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으니 충분히 이겨낼 것으로 생각하고서

“힘내. 잘 될 거야.”라고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또 혹시 “그게 뭐가 힘들어?”

라면서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아주 작은

모래알이 저를 멈춰 세웠던 것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리

큰 것만은 아닙니다. 작아 보이는

고통과 시련이 너무나 큰 아픔의

상처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셨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래서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합니다. 그런데 그의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리아와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바쁘게 일하고 있지만,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 마음이

어쩌면 앞서 저의 ‘작은 모래알’이

 아니었을까요? 주님과 함께

계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지만, 판단하는 마음이

작은 모래알로 작용해서 기쁘지도

또 행복하지도 않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집을 방문하셔도

기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고 있어도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잣대를

내세워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한다면,

 이 비교의 마음을 가지고 판단하고

단죄한다면 주님께서 우리 집을

방문하셔도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몫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자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마르타와 마리아)


신호등처럼

우리가
신호등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곧 바뀔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곧 바뀔 거야.
좋게
신호등처럼.
이 시는 '글배우' 작가의 것으로,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시이기에

이 자리에 소개합니다.

 한때 이 시가 인터넷 안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힘들어도

 조금만 참으면 어떨까요?

우리가 거리에서 쉽게 보는

 신호등이 빨간 불이라고

 절망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파란 불인

희망의 시간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굳게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의 편에서 서서 응원해 주십니다.

(디에고 발라스케스의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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