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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도신경 열번째/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⑵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09 조회수972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도신경 열번째날(2019.10.09.)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그 예수님의 수난은 크게 둘로 나눠볼 수 있어요 그 첫번째가 소극적 수난이에요 그건 다른말로 수동적 수난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그건 하느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 지우신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대속의 수난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건 소극적 수난입니다 십자가는 수동적 수난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이 겪으신 그 두번째 의미의 수난을 적극적 수난 능동적 수난이라고 불러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 대한 지고한 사랑으로 우리가 마땅히 인간으로서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순종의 삶을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드림으로서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혜와 의와 영생을 얻게 해 주시려고 수난을 당하신 것을 말하는 거에요 그건 사랑에서 격발된 거거든요

이렇게 예수님의 수난을 크게 둘로 나누면 수동적 수난과 적극적 수난으로 나눌 수 있어요 그걸 다른 말로 십자가와 순종이라고 표현을 해도 무방하죠 십자가가 수동적 수난이라면 순종 사랑에 의한 순종이 바로 적극적 수난이라 말이에요 능동적 수난이라 말입니다 십자가와 순종 중요한 건 그러한 십자가와 순종에서 비롯된 예수님의 고난이 전적으로 우리에 구원에 기여하는 것이였다라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라는 어구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전생애를 통하여 특별히 삶의 마지막에 하느님 백성들의 죄에 대하여 하느님의 진노를 육체와 영혼에 짊어지셔서 그의 고난을 통하여 유일한 속죄재물로서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저주로 부터 구원하셨고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혜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와 순종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예수님에 십자가 또한 하느님에 뜻에 대한 순종에서 유발된 거죠 하느님이 시켰더니 목숨을 걸고 했단 말입니다 그게 십자가에요 순종이잖아요 따라서 예수님의 모든 수난의 삶은 순종에서 비롯된 것이라 단정지어 말해도 틀림이 없어요 맞습니까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수난의 삶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이 이 세상에서 반드시 고난의 삶으로 표출이 된다라는 것을 모범으로 보여주는 삶이기도 한 거에요 순종에 삶은 반드시 고난으로 드러나게 된다를 보여준 삶이란 말입니다 십자가는 그냥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를 상징하는 소품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어떠한 방법으로 죽으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이 어디에서 유발된 것인가가 중요한 거에요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한 죽기까지의 순종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거에요 런데 그것이 고난으로 드러나더라 이게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로 요약이 된 예수님 전체에 생애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인 것입니다.

순종은 불순종에 회복을 말하는거죠 불순종하면 생각나는 것이 어떤 사건입니까 선악과 사건이잖아요 최초의 불순종, 하느님께서는 무죄한 상태로 태어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에덴에서 영원히 살수있는 조건을 하나 두셨어요 선악과 먹지 말아라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영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된다라는 것을 그냥 선악과라는 소품을 써서 설명해 준 거에요 인간은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할때 비로서 행복에 이를 수 있어요 그 상태를 의에 상태라고 하죠 사다크 하느님과 인간이 그 관계가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해낸 상태를 사다크 의라고 하니까 인간이 하느님께 순종하는 고 상태 완전하게 순종하는 그 상태, 그렇게 무죄한 자가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을때 영생에 상태가 되요

그런데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므로 무죄의 상태에서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게 되었고 의의 상태에서 불의의 상태로 내려간거 아니에요 그렇게 첫번째 아담이 망가뜨려 놓은 죄의 문제와 그 불의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 두번째 아담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인 거에요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심으로 무죄한 상태였어요 첫번째 아담과 동일한 조건이였어요 그리고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명령 즉 하느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완전한 순종을 보여주심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을 해주심으로 의에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공로로 거룩한 자가 됬고 그분 때문에 의로운 자가 된거에요 죄의 문제 의의 문제가 그분의 삶과 죽음으로 전부다 해결이 됬으니까 그 전체가 순종에서 온 거라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전체의 그 순종의 삶이 고난으로 드러나더라는 거에요 고난으로,

(필리비서 26-8)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순종이죠 그죠? 십자가는 순종이란 말이에요 복종이란 말이에요

(고린도 후서 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담이 의를 불의로 추락시켜 버렸는데 우리에게 그 의를 선물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어요 그리고 나면서 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순종하셔서 우리에게 그 의를 전가시켜 준거란 말이에요

(고린도전서 127-29절 보세요)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예수가 완벽하게 의와 거룩함이 되셔서 우리 안으로 뚫고 들어와 버린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거룩한 자가 됐고 의로운 자가 됐고 구속을 받은 자가 됐어요 그런데 왜 그 삶이 꼭 고난의 삶으로 나타나냐 말이에요 왜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느님에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가 자신에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의 원리속으로 들어오게 될때 둘 사이에 반드시 충돌이 생기게 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런데 하느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 나그네요 이방인으로 들어오잖아요 세상의 주인은 세상 권세잡은 잡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이 땅의 나그네요 이방인이요 소수로 들어와요 그래서 마땅히 그 충돌은 이 성도들의 당함으로 나타나는 거에요 우리가 다수이고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면 그 세상사람들이 우리에게 당하게 되겠죠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하느님이 한시적으로 그들에게 줬다 말입니다 우리에게 뭔가 가르치기 위해, 그래서 우리가 이땅에 소수로 나그네요 이방인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 세상과 우리의 충돌은 우리의 고난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거에요 하느님 나라에 가면 우리가 지배자이고 그들이 지옥에서의 소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여러분이 고난을 당해야 되는 거에요 왜? 하느님 나라와 이 세상은 완전히 달라요 삶의 원리도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충돌이 있어요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에 백성으로서 일차 호적을 한 분이에요 하느님 나라에 그분이 이땅에 내려 왔더니 세상이 나면서 부터 그를 학대했어요 가난이 그를 공격했고 배신이 그를 공격했고 모함과 배반이 그를 공격했으며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를 공격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거에요 예수님의 삶이요

우리들은 예수안에서 의로운자 거룩한 자가 되었죠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로 되어져 가야 되는 거에요? 지금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제 완성을 시켰어요 영적으로는 이제 가시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어떻게 만들고 계세요? 자기부인 십자가. 이게 뭐에요 순종. 우리들은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자로 변해 가는 거에요 지금 하느님께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고 있어요 우리 안에서, 그 순종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고난이 우리의 삶 속에 드러나게 되는 거에요 왜 하느님께 순종하면 순종할수록 세상과는 충돌이 더 커져요 따라서 우리가 이땅에서 고난을 얼마만큼 당하고 있느냐가 얼마만큼 하느님의 백성으로 순종하는 자로 지어지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표지인거에요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우리의 삶이 더욱더 힘겨워지고 어려워지고 하는 거에요

우리가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면 갈수록 세상에서 살 맛을 빼앗겨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당했던 고난을 우리들은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면서 반드시 당하게 돼있어요 예수님의 순종과 십자가의 삶은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예수님의 자유로운 사랑의 표출이였어요 자유로운 사랑이란 대상의 자격과 조건에 상관없이 무작정 무조건 사랑하는 거에요 언컨디셔널 러브에요 그게 하느님 나라의 사랑입니다 상대방이 사랑스러운 일을 했을때 사랑스러운 조건을 갖고 있을때 사랑해주는걸 조건적인 사랑이라 그래요 하느님 나라 사랑은 에수님이 원수들을 위해 아무런 조건없이 그냥 사랑을 해주기 위해 십자가를 진 그 사랑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게 하느님 나라의 사랑이며 그게 하느님의 사랑이에요

내가 너에게 어떤 상황을 허락한다 할지라고 너는 나를 알고 내가 너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너는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줘야 돼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가서도 너는 나를 반역하지 않을 수 있어 하느님은 그걸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해 조건없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우리로 성숙시키고 완성시키기 위해 그렇게 때로 하느님이 나를 돌아보고 계시는 거야 왜 하느님이 이렇게 침묵하셔 하느님이 살아게신다면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할 수 있어 이런 일을 허락하는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나를 사랑할 수 있니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그게 자유로운 사랑인거에요 그 사랑을 겪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자유로운 사랑으로 사랑하는 자가 있다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 보여줘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고난을 통과해야 되는 거에요 히브리서에 나오죠 예수님도 순종을 하는 과정에서 고난을 통과했어요 그분이 순종을 몰라서 배운게 아니에요 그건 헬라어 마드하고 파드하고 그런 단어 워드 플레이거든요 예수님이 순종을 몰라서 배워요? 순종을 했더니 그 과정에서 고난이 나타나더라는 뜻이에요 우리는 그런 연유로 이세상에서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 거에요

사랑은 손해보는게 아니에요 자유로운 사랑은 그게 내 안에서 진심으로 내 안에서 나오게 될때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게 바로 사랑인거에요 돈도 줄수 없고 명예도 줄수 없고 여러분의 자식새끼도 줄수 없는 그 행복을 그 사랑이 준다 말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그 사랑을 유발시켜 우리를 너무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우리에게 그 사랑을 훈련시키기 위해 삶 속에 고난을 허락하신 거에요 그리고 그때 우리들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를 세상에게 보여주면 되는 거에요 거기에 필요한게 우리 인생이며 순종의 삶이며 고난의 삶인 것입니다 그게 성도에 삶이에요

우리에게 있는 예수 믿는 바 그 안에 여기까지가 다 들어가 있어야 되는 거에요 아니면 다 이단입니다 순종이란 곧 나의 삶이 죽는 거에요 매일 매일 죽는 거에요 그래야 새 몸으로 살 수 있어요 죽으세요 이게 올바른 예수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도 예수 믿겠습니까? 아멘! 여기서 아멘 한사람들이 성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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