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한국 순교자들의 선교활동26-2 신유박해 전후의 선교활동한국교회는 주문모 신부를 모신지 6년 후에 신유박해(1801)로 성직자를 잃었고 목자없는 양떼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모진 박해를 겪으면서 열성적인 평신도 지도자의 활동으로 교세는 오히려 자라났습니다. 신도들이 받은 박해는 을사 추조적발사건(1875), 정미 박해사건(1787), 신해 진산박해(1791) 그리고 신유박해(1801)의 전국적인 규모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를 내고 교회조직은 완전히 소 멸되는 상태에 이르렀으나 신자들의 끈질긴 활동으로 천주교는 차츰 민중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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