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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감사는 더 큰 감사를 / 연중 제28주일 다해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13 조회수1,086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걸어가신다. 사마리아는 이방인 지역이고, 갈릴래아는 믿음으로 충만한 유다의 땅이다. 이방 지대와 선민의식으로 들뜬 지역의 경계선 상을 걸어가시는 우리 주님이시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모든 이가 그토록 죄인이라고 기피하고 멸시하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청원을 들어 고쳐 주셨다. 그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아마도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었던 그들의 치유에 대한 간절한 청원 때문이었으리라. 그렇지만 그들 대부분은 예수님께서 예언자이시니, 그분 치유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 중 고작 이방인 사마리아인 한 명만이 겨우 돌아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나마 나머지 아홉은 제 갈 길을 가 버렸다나. 예수님은 돌아온 그에게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은총의 구원을 더 보태어 선물로 주셨다. 당장 나은 것에 만족하고 돌아간 다른 아홉에게 주어지지 않은, 진정한 치유와 자유였던 거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처럼 이곳저곳 여러 경계선을 걸어가는 삶을 산다. 이 경계선에서 주님 향한 곳으로 머리를 둘 것인지, 아니면 세속의 삶으로 둘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냉정한 선택일 게다. 그분께 머리를 두는 이는 감사드릴 줄 아는 이며,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신앙인이리라. 이렇게 은혜를 간직하는 이는 생각지도 않는 더 큰 은총을 기묘한 방법으로 입는다는 걸 삶에서 자주 느끼리라. 그러니 우리도 이렇게 감사드릴 줄 아는 확실한 삶을 살아야겠다.

 

감사란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고맙게 바라보는 그 마음이 정녕 중요하다. 은혜를 느끼지 못하면 감사도 아예 없을 것 같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어찌 솟구치는 감사를 할 수가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산다. 과도한 풍요에 너무 많은 것을 당연시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삶은 너무 복에 겨워 감사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결과일 게다. 그러니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그 은총을 기억하면서, 늘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것 이 자체가 큰 은총이리라. 숨 쉬는 순간부터 삶의 한순간도 거저 얻어진 것은 없다. 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기적 같은 일들이 참 많았고 살아 있음 그 자체가 감사이다. 그런데 삶에는 이 기적 같이 감사하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평과 분노로 탄식하는 순간들도 적지 않다. 우리는 만족보다는 불만에 더 익숙해져 버렸기에.

 

사실 나병은 얼마 전만 하더라도 참으로 무서운 병으로 여겨졌단다. 그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다. 아마도 예수님 시대에는 더욱 그랬으리라. 늘 추방되었기에 한을 품고 살았으리라. 예수님은 그 나병 환자 열을 낫게 하셨다. 그런데 돌아와 감사드린 이는 이방인 한 사람뿐이었다. 그 잘난 아홉은 예수님 은총을 저버렸다. 우리도 삶에 만족하며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그 이방인이었는지, 아니면 너무 좋아 그냥 가 버린, 그 잘난 아홉에 속하는지를 돌아보아야겠다.

 

이렇게 돌아보면 하느님의 은총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면 산다. 마치 치유 받고도 돌아와 감사할 줄 모르는 그 아홉 명의 환자들과 비슷하다. 행복하기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드리기에 행복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꼭 되새기자. 하루하루를 감사로 시작하고 또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하겠다. 감사는 더 큰 감사로 우리를 언제나 그분께로 인도한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늘 묵상하면서, 정성들여 주어진 하루를 봉헌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사마리아,나병 환자,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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