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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0.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13 조회수1,28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10월 13일

연중 제28주일

제1독서 2열왕 5,14-17

그 무렵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14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16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이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17 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2독서 2티모 2,8-13

사랑하는 그대여,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9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분과 함께 살 것이고

 12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13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면

참으로 많이 발전했습니다.

어렸을 때 집의 텔레비전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었을 때,

새로운 세상이 온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이상입니다.

어렸을 때 모 만화잡지에서 보았던

미래의 세계에 대한 예측들이

 실제로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훨씬 더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으며, 동시에 안전한

시대를 살면서 번영을 누립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훨씬 더 높은 행복도를 느끼면서

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큰 절망이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부유하고 안전한 곳에 살수록

자살할 확률이 높다는 통계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은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분명 과거보다 더 좋은 조건,

더 나은 조건 속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희망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을 위해 통제력, 가치에 대한 믿음,

그리고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통제력은 희망을 방해하는 것을

과감하게 끊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가치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희망을 향해 노력할 이유를

찾게 해줍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같은 행동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이 있을 때

희망을 더욱더 쉽게 찾게 해줍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대한 신앙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려는 통제력,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 같은 신앙으로 하나를

이루는 주님 공동체를 통해 우리는

희망을 늘 마음 안에 간직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분명히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통제력 없이 살 때 희망이 있을까요?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순간의 만족에만

급급하다면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요?

 그 누구도 없이 혼자서 과연 희망에 찬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언제나 주님 안에 머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만 주님을 찾고,

그 문제가 해결되면 주님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는 나병 환자

10명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병이 나았다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온 사람은

 몇 명이었습니까?

단 한 명만이 그것도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 사람만

찾아와 감사를 드리지요.

나머지 아홉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우리 역시 그런 모습을 취할 때가

참 많습니다. 어려울 때는 간절히

기도하면서 자비를 청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자신의 힘으로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는지

주님을 떠나고 맙니다.
다시 돌아와 감사를 드리며

주님과 함께했던 사람이 받은

은총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주님으로부터 자기 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구원의 은총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고통과 시련의 시간 때만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울 때도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만이

참 희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는 모두 인생의 격차를

줄여주기 위해 서 있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힘든 시간을 이겨내곤 합니다.

(오프라 윈프리)

(치유를 받은 나병환자 10명)


감사할 이유 찾기

카네기 철강사(현 US스틸)를 세워서

강철왕이라고도 불리던 카네기가

강연할 때의 일입니다.

그가 강연하고 있는데,

한 여성이 벌떡 일어나 자신을 향해

거친 욕설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고 그 욕설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었지요. 강연이 모두 끝난 뒤에,

한 기자가 너무나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험한 말을 듣고도

끝까지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오히려 웃을 수 있으신지요?”
그러자 카네기가 말했습니다.
“사실 나는 그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니란 사실이 매우 고마웠다네.”
어떻게든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 감사할 이유를 찾으면 화낼 일도

짜증 낼 일도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감사할 이유보다는

화내고 짜증 내는 이유부터

찾는 것이 아닐까요?
감사할 일을 찾아보세요.

세상이 달라집니다.

(코시모 로셀리의 산상수훈과 나병환자의 치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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