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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회개는 내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봉헌으로부터 시작된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25 조회수1,85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다해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회개는 내가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봉헌으로부터 시작된다>

 


 

 

     복음: 루카 13,1-9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어떤 마을에, 이교도 사원과 가톨릭 성당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습니다. 사원의 예배와 성당의 미사는 매일 같은 시간에 있었습니다. 한 마을 이웃에 사는 이교도 신자인 팜푸스와 그리스도인 키루스는 각자의 예배소로 가는 길을 나란히 같은 시간에 걸어가곤 하였습니다.

 

이교도 신자인 팜푸스는 늘 자기 신을 위하여 바칠 희생제물을 들고 갔었으나 그리스도인 키루스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음이 의아하게 생각되어 어느 날 팜푸스가 물었습니다.

선생, 당신은 예배하러 가면서 당신 신한테 바칠 제물을 왜 가져가지 않는 거요?”

 

이 말에 키루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배 드릴 때마다 하느님께 무언가를 바친답니다.“라고 말하자 팜푸스는 어리둥절해 물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무러한 제물도 가져가지 않았잖소?”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제물을 그분께 바친답니다.”

그럼 과연 무엇을 당신 신께 바친다는 말이요?”

키루스는 대답했습니다.

제 자신입니다.”

 

 

물론 자신을 바친다고 하면서 자신의 소유를 함께 바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바치지 않고 소유물만 바치는 것도 참된 봉헌은 아닙니다. 봉헌은 내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행위입니다. 따라서 봉헌 없는 하느님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 없는 이웃 사랑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줄 모르면 이웃도 사랑할 줄 모릅니다. 하느님께 내어줄 수 없는 사람은 이웃을 위해서도 내어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께 무언가 얻어내려는 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도 이웃을 이용하여 무언가 챙기려는 속셈입니다.

 

 

봉헌엔 나의 피가 섞여야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에 나의 주인이 되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섞는 것입니다. 감사가 섞이지 않은 제물은 내 피가 섞이지 않은 제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빌라도가 갈릴래야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했다는 말을 예수님께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왜 진작 제물이 피를 섞지 않았느냐는 뜻입니다. 회개는 봉헌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참다운 봉헌이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주님께 봉헌했어야 할 선악과를 따먹은 것에서부터 모든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참다운 봉헌은 나의 생명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봉헌은 이웃사랑으로 이어져야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실로암은 파견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이웃사랑을 위해 파견 받은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아직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교만을 상징합니다. 교만은 자신이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회개했다면 봉헌하고 있을 것이고 봉헌은 하느님께서 나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봉헌은 주님이 원하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봉헌으로 돌아오는 것은 성령입니다.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면 성령으로 축성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이유는 그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봉헌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면 이웃 사랑의 열매는 맺힐 수 없게 됩니다.

 

먼저 나의 봉헌이 나를 봉헌하는 것이어야 주님의 계명을 따름으로 이어집니다. 만약 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오늘 복음처럼 당신의 천사들에게 이렇게 명령할 것입니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느님으로부터 잘리지 않으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참된 봉헌으로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나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인정하여 무슨 뜻이든 따를 준비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이웃 사랑을 소명으로 여기게 됩니다. ‘지금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만간주님께서도 우리에 대한 열정을 접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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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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