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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시몬과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27 조회수1,701 추천수13 반대(0)

지난 7월에 함께 산행한 분들과 조촐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그것도 동부에 사는 분들이기에 그리 멀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오는 데 7시간 걸렸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함께 저녁 먹기 위해서 7시간 운전하고 온 겁니다. 지난번 2시간 걸려서 미사를 도와주었는데, 어쩌면 저도 미사를 도와주기 위해서 7시간 운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조선팔도를 혼자서 사목했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열정과 헌신에 비하면 7시간 운전은 내세울 게 못 됩니다.

 

뉴욕의 한인 가톨릭 방송과 간략한 대담을 했습니다. 제게 몇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미국의 한인 공동체도 고령화되고 있고, 젊은이들은 현지의 미국인 성당에 가기에 신자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어떤 대안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교회가 당면한 위기이며, 도전입니다. 실적과 성과에 치중한 사목, 본당 신설과 신축에 치중한 사목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실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가졌던 영적인 충만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말씀이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제, 겸손한 사제,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아는 사제, 말씀에 충실한 사제가 되어야 합니다. 대화하는 가정, 기도하는 가정, 감사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간절히 청했듯이, 누룩이 되는 사제, 기름을 준비한 신앙인이 있다면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실 겁니다.

 

신문을 보는 사람도 줄어들고, 젊은이들은 영어가 친숙한데 가톨릭 평화신문을 위한 구상과 대책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신문의 제작과 발행은 처음 접하는 사목입니다. 주님께서 눈이 먼 소경에게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셨고, 소경은 눈을 떴습니다. 가톨릭 평화신문의 기사가 독자들의 마음을 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리, 성서, 나눔, 사목, 교회 소식을 통해서 경쟁과 성공의 문이 아닌, 희생과 사랑의 문을 열고 싶습니다. 그 문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죽은 소녀를 향해서 탈리타 쿰(일어나라)’이라고 말씀하셨고, 죽었던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가톨릭 평화신문의 기사가 절망과 근심, 고통과 원망 중인 사람을 희망과 믿음, 인내와 용서로 일으켜 세우면 좋겠습니다. 가톨릭 평화신문을 사랑하는 직원이 있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광고를 주는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문을 읽어주시는 독자가 있습니다.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을 해서는 다가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행복은 해야 할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친구처럼 다가온다고 합니다.

 

오늘은 시몬과 타대오 사도 축일입니다. 사도들이 직면한 문제는 제게 주어진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변변히 머물 공동체도 없었습니다. 재정적인 뒷받침도 없었습니다. 확고한 교리도 없었습니다. 교계제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들은 복음을 선포하였고,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예루살렘을 넘어 고린토, 갈라디아, 필립비, 골로세이, 에페소, 로마까지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시련과 박해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고, 사도들은 주님의 모퉁이 돌 위에 세워진 성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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