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경에서 바라본 말조심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30 조회수1,858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경에서 바라본 말조심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성경에서 바라본 말조심

화해하여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오 5,22)

오만에 대한 경계

이웃의 잘못에 일일이

 화내지 말고 거만한 행동은

조금도 하지 마라.

오만은 주님과 사람 앞에서

혐오스럽고 불의는

둘 다에게 역겹다.

(집회서 10, 6-7)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여라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꾸짖지 마라.

먼저 생각해 보고 나서

질책하여라.

듣기 전에 대답하지 말고

남이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지 마라.

너와 상관없는 일로

다투지 말고 죄인들이

시비를 가릴 때

자리를 함께하지 마라.

(집회서 11, 7-9)

침묵과 말

때에 맞지 않는

꾸지람이 있고 침묵을

지키면서도

현명한 이가 있다.

침묵을 지키면서

지혜로워 보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말이 너무 많아

미움을 받는 자도 있다.

대답할 줄 몰라서 침묵을

지키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말할 때를 알고 있어서

침묵을 지키는 이도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기다리며 침묵하지만

허풍쟁이와

바보는 때를 놓친다.

말 많은 자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권위를

내세우는 자는

미움을 받는다.

(집회서 20, 1; 5-8)

상스러운 말

어떤 언사는 죽음과도

비교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야곱의 유산 가운데에서는

발견되지 않기를 바란다.

경건한 이들은 그 모든

언사와 거리가 멀어

그들은 죄악에

빠져 들지 않으리라.

무식하고 상스러움에

네 입을 길들이지 마라.

 죄스러운 말이 거기에 담긴다.

고관들과 자리를 함께할 때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억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그들 앞에서

너 자신을 잊은 채 습관대로

미련하게 굴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면서 네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리라.

상스러운 말을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은 평생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집회서 23, 12-15)

말다툼

말다툼을 그만두어라.

죄를 덜 짓게 되리라.

화 잘 내는 인간이 말다툼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죄지은 사람은 친구들을

불안하게 하고 서로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

사이에 불목을 일으킨다.

땔감을 넣을수록 불길은

더욱 타오르고 고집을

피울수록 말다툼은

더욱 격해지리라.

인간은 세도가 클수록

그 분노가 커지고

재산이 많을수록

그 진노가 치솟으리라.

성급한 말싸움이 불길을

일으키고 조급한 말다툼이

피를 흘리게 한다.

불씨를 입으로 불면 더욱

세차게 타오르고 불씨에

침을 뱉으면 꺼지리라.

바람과 침 둘 다

네 입에서 나온다.

(집회서 28, 8-12)

올바른 지식

(성 베르나르도)

"세상에는 지식 그 자체만을

위해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치스러운

호기심이다.

또한 세상에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지식을

추구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허영이며 이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면

명예를 위해서 지식을

원하기도 한다.

이것 역시 믿을 수 없고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바로 애덕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식으로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그것을

찾기도 한다.

이것은 지혜이다.

이 모든 형태의 지식

추구 가운데서 마지막

두 가지만이 올바르게

사용되는 지식이라

할 수 있다."

희망은 역경을 극복하는 힘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블로흐는 "인간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

라고 말하였다.

인간에게 극한 상황에서도

인내와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힘은 희망이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한

어떠한 시련이라도 기꺼이

견뎌낼 수 있다.

그러므로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정열과

생활의 보람이 없다.

희망이 없으면 삶의

목표도 없기 때문에

 일시적 쾌락에 탐닉하여

방종과 타락을 일삼거나

절망 속에서

삶을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삶을

반복하는 자들은

순간적으로는 기쁨을

얻을지라도 그것으로 인한

허탈감은 오래도록

지속되기 마련이다.

"희망(소망) 속에 기뻐하라"

(로마 12,12)

말씀처럼 희망 속에서

절망을 이겨내고

일시적 욕망을 절제할 때

비로소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희망이란

 "신뢰와 확신의 감정"

이라 정의한다.

이런 의미에서 희망이

종교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면 참된 신앙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시고 그 성취를 약속하셨다.

희망은 신앙과 확신 속에서

성장해가는 미래의 열매이며,

인내와 갈망 속에서

표현되는 기대이다.

하느님을 향한 믿음 속에서

희망을 키우고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희망의 실현을

약속받은 자들은 결코

자신의 열악한 현실과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참된 희망을 간직한 사람은

오로지 미래의 목표를

성취할 날을 고대하며

그날의 열매를 위해

오늘도 현실 속에서

성실히 땀을 흘린다.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미래의 축복을 향해

오로지 신앙과 노력을 양손에

쥐고 달려가는 자이다.

(창골산 봉서방)

사람의 마음

은에는 도가니,

금에는 용광로

그러나 마음을

시험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 17,3)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노래가 있지만,

모든 인간의 마음이 바로

갈대와 같습니다.

죄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마음은 정처가 없어서

그 본향을 상실한 채 표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성 훈련의

첫 자리는 마음의 훈련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때 비로소

마음은 닻을 내리게 됩니다.

잠언 기자는 단련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모든 단련은 단련의

주체를 필요로 합니다.

도가니는 은을 단련하고

화덕은 금을 단련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는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지으신 주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사람의 창조자이시며

동시에 죄에 물든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시는

구속자이신 주님이십니다.

치유는 회복이고

회복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너희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성령의

지배아래 두기만 한다면

성령은 우리가 우리 주님의

마음을 품도록 여러 환경에서

단련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환경을 감사할 때 환경은

마음의 도가니가 됩니다.

참기 어려운 환경에서

인내를 연습하면 주님의

 인내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자리 잡습니다.

용납하기 어려운 대상을

의지적으로라도 수용하면

주님의 긍휼

(矜恤,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

이 우리 마음 안에 자리 잡습니다.

그렇게 하기 힘들 때 기도를

연습하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

정함 없는 사람의 마음 안에

주님의 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지으신 주님,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도록 성령의 통치를

날마다 사모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이동원님)

시편 37

1 [다윗] 너는 악을

저지르는 자들 때문에

격분하지 말고

불의를 일삼는 자들

때문에 흥분하지 마라.

2 그들은 풀처럼 삽시간에

스러지고 푸성귀처럼

시들어 버린다.

3 주님을 신뢰하며

선을 행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4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5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

6 빛처럼 네 정의를

떠오르게 하시며 대낮처럼

네 공정을 밝히시리라.

7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물며

그분을 고대하여라.

제 길에서 성공을

거두는 자 때문에,

음모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

때문에 격분하지 마라.

8 노여움을 그치고

성을 가라앉혀라.

격분하지 마라.

악을 저지를 뿐이다.

9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주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은

땅을 차지하리니.

10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악인은 없어지리라.

그가 있던

자리를 살펴보아도

그는 이미 없으리라.

11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땅을 차지하고 큰 평화로

거움을 누리리라

12 악인이 의인을 거슬러

계교를 꾸미며 그를 향해

이를 가는구나.

13 주님께서 악인을

비웃으시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시기 때문이다.

14 악인들이 칼을 빼들고

활을 당겨 가련한 이와

불쌍한 이를 쓰러뜨리고

옳은 길 걷는 이들을

죽이려 하는구나.

15 그러나 그들의 칼은

자기들 가슴을 꿰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라.

16 의인이 가진 적은 것이

악인들의

많은 재산보다 낫다.

17 악인들의 팔은

 부러지지만 의인들은

주님께서 받쳐 주신다.

18 주님께서 흠 없는 이들의

나날을 아시니 그들의 소유는

길이길이 남으리라.

19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기근 때에도

굶주리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악인들은 멸망하고

주님의 원수들은 초원의

화사함처럼 사라지리라.

연기 속에 사라지리라.

21 악인은 꾸기만 하고

 갚지 않으나 의인은

 너그럽게 베푼다.

22 그분의 복을 받은 이들은

땅을 차지하고

그분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뿌리째 뽑히리라.

23 주님께서는 사람의

발걸음을 굳건히 하시며

그의 길을 마음에

들어 하시리라.

24 그는 비틀거려도

쓰러지지 않으리니

주님께서 그의 손을

잡아 주시기 때문이다.

25 어리던 내가

이제 늙었는데

 의인이 버림을 받음도,

그 자손이 빵을 구걸함도

보지 못하였다.

26 그는 늘

너그럽게 빌려 주어

그 자손이 복을 받는다.

27 너는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길이 살리라.

28 주님께서는 올바른 것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지만

악인들의 자손은

뿌리째 뽑히리라.

29 의인들은 땅을

차지하여 언제까지나

그 위에 살리라.

30 의인의 입은

지혜를 자아내고 그의 혀는

올바른 것을 말한다.

31 자기 하느님의

가르침이 그의 마음에 있어

그 걸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32 악인은 의인을 엿보며

그를 죽이려 꾀하지만

33 주님께서는

그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심판 때에 그를

단죄하지 않으시리라.

34 너는 주님께 바라고

그분의 길을 따라라.

그분께서 너를 들어 올려

땅을 차지하게 하시고

 너는 악인들이 뿌리째

뽑힘을 즐거이 보리라.

35 나는 악인이 폭력을

휘두르며 푸른 월계수처럼

뻗어 감을 보았다.

36 그러나 그는 지나자마자

이내 사라져

 나 그를 찾아보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37 흠 없는 이를 지켜보고

올곧은 이를 살펴보아라.

평화로운 이에게는

후손이 이어지리라.

38 죄인들은 모두 멸망하고

악인들의 후손은

뿌리째 뽑히리라.

39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께서는

 곤경의 때에 그들의

피신처가 되어 주신다.

40 주님께서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들에게서

빼내어 구원하시니

그분께 몸을 피한 까닭이다.

시편 37편 

<온유한자의 승리>

온유함은 세상에서

 거의 유약함이나 비겁함의

동의어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온유한자를 경멸합니다.

그래서 온유한자는 세상에서는

주변인간으로 소외되어

무시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온유한자는 속절없이 세상의

강한자들의 유희를 지켜보는

구경꾼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온유한자는 손해보고 빼앗기는

패배자로 보입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온유한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고 약속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그의 조카 롯의 종들사이에

소돔 고모라의 땅을 에워싸고

갈등이 생겼을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양도합니다.

그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기득권을 포기합니다.

그에게 온유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롯이 선택한

소돔 고모라는

 결국 불바다가 됩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온유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살았고,

다윗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게

구박당하고 사지에

던지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에게 주어진 미션

(mission)에 성실합니다.

다윗도 사울왕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쫓겨 다닙니다.

그러나 그는 신하된 본분에

성실하며 왕을 용서합니다.

 마침내 요셉은 총리가 되고

다윗은 왕이 되어 형제들을

기게 됩니다.

온유가 승리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스스로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재판을 받으시며

십자가로 가시는 도상에서

지속적으로 고난을 받으시며

일방적인 형벌을

감수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침묵으로

 이 모든 상황을 수용하셨고

항을 포기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허다한 인류가

그 앞에 머리숙여 예수님을

왕과 하느님으로 경배합니다.

온유가 승리한 것입니다.

주여, 악이나 불의가

득세할 때 제가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게 하소서.

온유한자가

결국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을

즐기게 됨을

믿게 하옵소서. 아멘

(이동원님)

*~*~*~*~*~*~*~*~*~*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http://마리아.한국)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