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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 묵상신앙의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연옥영혼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01 조회수1,611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9년 다해 위령의 날



<신앙의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연옥영혼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복음: 마태오 5,1-12ㄴ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본의 후방 기지 병원에 있던 젊은 군의관 로다는 일본 군부의 명령을 받아 미군 포로를 데려다가 마취시켜서 생체 실험하는 데 참가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군 포로를 잡아서 진단하는 척하다가 그 포로들에게 병이 들었으니까 수술을 해야 된다고 속였습니다. 미군 포로가 처음에는 의심하고 거부해 보려고 했지만 적의 의사이든 아군 의사이든 혹은 전쟁 중이든 평화시이든 의사만은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사에 대한 절대 신뢰로 수술을 승낙했습니다.

 

일본 의사는 미국 포로의 몸을 해부해서 왼쪽 폐 전체를 잘라 내고 오른쪽 폐의 상엽을 절단했습니다. 폐를 얼마만큼 남겨 놓았을 때 사람이 얼마 동안 살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리를 잘랐을 경우에는 얼마 동안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생체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로다라는 의사는 그 순간에 자기의 귓가에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죽였다. 죽였다.’라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책임이 없다.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안 할 수 없었다.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책임이 없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고 또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책감을 느껴 서로 상대를 심판하며 자기 합리화 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이후로 로다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자기가 잘라 낸 미군 포로의 폐를 보며 그 젊은 의사는 미쳐 버립니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사람의 폐를 보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죽인 인간의 일부분을 보고도 무감각하고 아무 느낌도 없는 무시무시한 인간이 되어버린 자기 자신을 보고 더 무서웠던 것입니다.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양심의 가책의 정화였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한 연민이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심의 가책을 지울 수 없었고 그러니 이웃에 대한 연민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해졌습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미쳐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엔도 슈사꾸의 바다와 독약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731부대처럼 생체실험을 하면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져버리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고통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기생충이나 모기는 고통을 모릅니다. 남의 피를 빨아먹으면서도 연민이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연민의 마음이 생긴다면 모기는 굶어 죽을 것입니다. 모기가 남이 아픈 것에 무관심한 이유는 자신이 아파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피를 빨리는 고통을 느껴보았다면 남의 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빨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나쁜 짓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고통을 미뤄 짐작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피하며 산다면 결국 모기와 기생충처럼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까닭에 타인에 대한 연민이 일지 않는 고통은 감수해야합니다.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어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사는 존재적인 고통을 참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누구도 참아낼 수 없습니다. 인간은 내가 받는 고통보다 타인에게 내가 주는 고통을 더 아파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고통을 더 많이 받고 상처 더 받은 사람이 더 큰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은 나를 성장시키고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는 필수요소입니다. 어떤 인간도 고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고통 없이 하느님 자녀의 지위에 오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충실한 신앙인이라면 고통의 길을 걷고 있어야합니다. 만약 나를 성장시키는 고통을 이 세상에서 충분히 체험하지 못했다면 죽어서 연옥에서라도 다 채워야합니다. 고통을 아는 사람만이 이웃을 아프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이 세상에서부터 연옥을 거치는 것입니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연옥영혼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곧 연옥생활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연옥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얼마나 큰 고행과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도 감히 바로 천당에 갈 생각을 못하고 당연히 연옥을 거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충실한 사람일수록 같은 고통을 당함으로써 연옥을 거치는 모든 이들의 고통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동병상련 때문에 연옥영혼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옥영혼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그래서 이 지상에서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합시다. 그러면 그들도 우리를 위해 연민을 가지고 우리의 지상 여정에서 연옥을 빨리 거칠 수 있도록 주님 앞에서 기도해 줄 것입니다. 이것이 성인들의 통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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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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