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아는 분의 입관식을 보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1 조회수1,277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제 주일 이른 시간에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바로 한 자매님의 선종과 연도를 부탁한다는 문자였습니다. 바로 하루 전에도 연도가 있어서 연도를 하고 왔습니다. 교중 미사를 마치고 연도를 하러 갔습니다. 저희 본당은 대개 거의 본당 바로 앞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을 잘 이용합니다. 성당과 가까이 있고 해서 여러 가지로 장점이 있습니다.

 

장례식장 입구로 들어가는데 상주가 안면이 있었습니다 보니 제가 살던 집 옆집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사실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아들과는 장례식장에서 인사를 처음으로 나눈 것입니다. 옆집에 살았어도 고인되신 분만 제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그 이후로 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성당에서 우연히 뵈었습니다. 인사를 드렸습니다. 알고 보니 성당 교우였습니다.

 

냉담이라고는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성당을 열심히 나오시기가 말씀드리기 곤란한 사정이 좀 있는 분입니다. 여기에선 이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이후로 간혹 성당에서 뵌 적이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판공 때 뵌 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분 개인에게는 가슴 아픈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제 알게 된 것입니다만 그동안 뵐 수 없었던 게 아들이 천안인가 어디 살아서 큰아들 집으로 가서 사시게 되어 그동안 뵐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도 갑자기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정말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사실 장례식장을 가기 전에는 전혀 모르는 분인 줄 알고 갔는데 영정 사진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영정 사진을 보니 예전에 제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시기 전에 뵈었던 아주 단아한 모습의 얼굴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의 어머님과도 잘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옆집에 살아서도 그렇지만 저희와 같은 종씨입니다. 그래서 어머님과도 친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그때 절을 열심히 다니셨습니다. 그때는 그분이 성당에 다니시는 걸 몰랐습니다. 종교가 다름에도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도 뵈면 인사를 드리면 항상 밝게 인사를 받아주신 분이었습니다. 한때는 이웃이었고 어느 날 우연히 성당에서 뵙고 교우라는 걸 알고서는 더더욱 친근함이 있었는데 이렇게 비운의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연세가 일흔 하나였습니다. 보니 아저씨도 2007년도에 선종하셨고 그때 저희 본당에서 장례미사를 했다고 하는 걸 아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땐 제가 영세를 받기 전이라 그 소식도 몰랐습니다. 연도를 하고 3시쯤에 입관을 하신다고 해서 한때 이웃 아주머니였고 저에게 너무나도 다정스럽게 대해 주셔서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한번 뵙고 싶은 마음에 입관 때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본당에서 지금까지 장례가 많이 있어서 고인을 많이 뵈어서 이젠 두렵지 않습니다. 근데 어제는 입관실 앞에 들어가기 전에 수의를 입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순간 멈칫했습니다. 고인이라 두려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전에 제가 이분에 대해 제 기억 속에 좋은 이미지로만 남아 있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움이 제 마음을 두렵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치실로 들어가서 아주머님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학생 때부터 아주머니라고 불렀기 때문에 자매님이라는 호칭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인의 얼굴을 뵙고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이웃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이웃 이상으로 잘 지낸 분이었고 또 얼굴이 예전에 마지막으로 뵈었던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어서 순간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제 입관식에는 고인의 가족과 본당 연령회 염습하시는 연령회 회원 몇 분과 저 이렇게 참석을 했습니다. 입관 예식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아주머님 손에 제 손을 올려서 말씀드렸습니다. 예전에 옆집에 살았던 총각입니다. 아주머니, 부디 예수님 만나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라고 말씀을 드리고 나중에 성수를 뿌려드렸습니다.

 

이제 영세를 받은 지 만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천주교 장례 예식 때문에 많은 고인의 모습과 실제로 입관예식을 수차례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집에 돌아온 후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떠오르는 화두가 인생무상이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왔다가 한 세상 살고 가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고인처럼 70평생을 사람이 산다고 하더라도 항상 기쁜일만 있지 않을 테고 슬픔과 고통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이분이 한 생애를 사시면서 이분이 짊어지고 가시는 여러 가지 십자가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건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네요. 예전에는 제가 성당에 다니지 않아서 몰랐고 또 그땐 이분이 성당에 다니시는 것도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분도 아마 이분이 짊어지고 가시는 십자가를 신앙의 힘으로 버텨내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제가 천주교인이 된 입장에서 과거 이분의 삶을 제 나름 반추해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이분이 가슴 아픈 삶을 살아가신 걸 보고 또 이분의 죽음을 보니 우리네의 삶이 그냥 허무해서 인생무상이라는 게 아니고 이 지상에서의 삶이 결국에는 한 생애를 어떻게 살았던지 나중에는 조용히 말없이 수의 한 벌 입고 이 세상에 가족과 친지를 두고 홀로 저 세상을 누구나 떠나야 한다는 걸 보니 인간이 길지 않은 한 세상 살면서 아무리 긴 세월을 살았더라고 해도 정말 영원이라는 하느님의 시간으로 보면 정말 하루살이 인생도 아닐 텐데 이런 하루살이 인생을 살면서 마치 이 세상에서의 삶이 모든 삶이라고 생각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네의 삶이 너무나도 어리석은 삶과 같다고 생각하니 인생무상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지 제가 허무주의자나 비관주의자가 말하는 것 같은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인생무상, 이 세상의 삶이 덧없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춰질 수가 있을 수 있지만, 한편 생각의 관점을 다르게 가진다면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영성적으로 좀 더 좋은 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삶을 열심히 살되 이 세상의 삶은 우리가 영원히 있게 되는 삶이 아니고 보다시피 누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삶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그토록 미련과 애착을 가지고 사는 게 신앙적인 삶에서는 별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오히려 이 세상의 삶보다 우리의 영혼이 가게 되는 저 세상에서의 삶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게 영성적으로는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분의 죽음을 보면서 해 본 묵상입니다. 11월은 또 위령성월이라서 이런 묵상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