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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졸라대는 과부의 비유 (루카 18,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6 조회수1,467 추천수0 반대(0) 신고

 



 

지혜서의 저자는, 주님의 자녀들은 해를 입지 않고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지혜 18,14-16; 19,6-9)
14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15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
16 그는 당신의 단호한 명령을 날카로운 칼처럼 차고 우뚝 서서  만물을 죽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가 땅 위에 서니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19,6 당신의 명령에 따라 온 피조물의 본성이 저마다 새롭게 형성되어  당신의 자녀들이 해를 입지 않고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7 진영 위는 구름이 덮어 주고  물이 있던 곳에서는 마른땅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8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 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9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 같았습니다. 또 어린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 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

 

화답송  시편 105(104),2-3.36-37.42-43(◎ 5ㄱ 참조)
◎ 주님이 이루신 기적을 기억하여라.
○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
○ 그분은 그 땅의 모든 맏아들을, 모든 정력의 첫 소생을 치셨네. 이스라엘이 은과 금을 들고 나오게 하셨네. 그 지파들에는 낙오자가 없었네. ◎
○ 당신 종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거룩한 말씀 기억하셨네. 당신 백성을 기쁨 속에, 뽑힌 이들을 환호 속에 이끌어 내셨네. ◎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불의한 재판관에게 졸라대는 과부의 비유를 드신다. (루카 18,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지혜18,14-16 ;19,6-7)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 (지혜18,15) ~~

 당신의 명령에 따라 온 피조물의 본성이 저마다 새롭게 형성되어, 당신의 자녀들이 해를 입지 않고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지혜19,6)

 

 지혜서의 제3부 지혜서 10-19장이스라엘 초기 역사에서의 지혜의 역할을 다룬다.

지혜서 10장 1-21절에서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서 지혜가 한 역할을 추적하는 것은 지혜서 6-9장에서 지혜를 묘사한 부분을 마치고,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집트 탈출 때 있었던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는 전이의 기회를 제공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주제하느님 백성의 초기 역사에서도 지혜가 활동하였고, 하느님께서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 가신 수단이 바로 지혜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구절들에서 구체적인 이름을 대지 않으면서 성서에 나오는 여러 사람의 영웅들(과 몇몇 악인들)을 지적한다.

이 수사학적 기교는 그들의 정체를 식별해 낼 수 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것을 전제한다.

 

지혜서 11장 1-14절첫 번째 대조를 시작으로 이집트 탈출과 연관된 일곱 가지 대조가 시작된다.

 

일곱 가지 대조를 모두 뒷받침하는 기본 원칙 지혜서 11장 5절에서 처음 밝혀진다.

그 원칙은 "그들의 원수들에게는 징벌의 도구가 되었던 바로 그것이 곤경에 빠진 그들에게는 득이 되었다." 는 것이다.

 

첫 번째 대조가 끝나면서 신학적 성찰(지혜11,15-12,27)과  우상 숭배에 관한 기록(지혜13-15장)으로 대조가 중단된다.

 

그리고는 지혜서 11장 1-14절에서 시작된 일련의 대조로 돌아가서, 두 번째 대조(지혜16,1-4)는 하느님께서 이집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을 대하신 상이한 방식을 다룬다.

 

세 번째 대조(지혜16,5-14)는 메뚜기(탈출10,1-20참조)와 등에(탈출8,20-32) 재앙에서 이집트인들에게 있었던 일을 광야에서 구리뱀 이야기로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일과 비교한다(민수21,5-9참조).

 

네 번째 대조(지혜16,15-29)는 하늘에서 이집트인들에게 내려온 것(우박과 번개)과 이스라엘인들에게 내려온 것(만나)를 다룬다.

 

다섯 번재 대조(지혜17,1-18,4)는 이집트 땅을 덮친 암흑과 이스라엘이 이집트 탈출 때 체험한 빛을 다룬다.

 

여섯 번째 대조(지혜18,5-25)는 이집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의 죽음을 다룬다.

일곱 번째 대조(지혜19,1-22)는 홍해 바다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해석한다(탈출14장참조).

 

오늘 독서 말씀은 지혜서 18장 14-16절과 19장 6-9절로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대조에 속하는 말씀이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의 적들을 파멸시킨 대행자"당신의 전능한 말씀"이었다(지혜18,15).

그 말씀은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인 지혜, 고대 근동 문학과 히브리 성서에서 친숙한 모습인 전사이신 하느님, 그리고 "땅 위에 서서 하늘까지 닿는"(지혜18,16) 거대한 천사가 합쳐진 것이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과 이집트인들이 재앙을 겪게 된 것은 바로 자신들의 잘못 때문이라는 사실이 줄곧 제시된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아기들을 죽였고(지혜18,5), 요술에 마음을 빼앗겼으며(지혜18,13), "무서운 꿈"으로 미리 알려 주었고(지혜18,17), 자기들이 그토록 고통을 받는 이유를 알았다(지혜18,19).

어린이들과 물이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이었으나 이집트에게는 파괴였다.

 

한편 일곱 번째 대조(지혜19,1-22)에 나오는 홍해 사건에서 하느님의 뜻하신 목적"당신의 백성은 경이로운 여행길을 체험하는 동안  저들(이집트인들)은 이상한 죽음을 맞게 하려는 것"(지혜19,5)이었다.

 

지혜서 19장 1-4절에서 지혜서의 저자는 하느님께서 미리 알고 계셨다는 사실과 도망가는 이스라엘인들을 뒤쫓아가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균형있게 점검한다.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인들을 뒤쫓아 간 것"저들의 고통에 아직 남아 있는 징벌을 마저 채우게"(지혜19,4) 하려는 것이었다.

 

지혜서 19장 6-12절에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헤매는 것을 놀랍게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민수11장 참조).

 

이스라엘의 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다양한 요소들을사용하시어 사람들이 "온 피조물의 본성이 저마다 새롭게 형성되어" (지혜19,6)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기뻐하며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동물, 물고기 그리고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주셨지만, 이집트인들은 모기와 개구리들로 징벌하셨음을 상기하였다.

 

그리고 지혜서 19장 13-17절에서 지혜서의 저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이집트인들을 징벌하시는 하느님의 정의를 주장한다(지혜19,13).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18,1-8)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8)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는 말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믿음'지속적으로 항구하게 하느님께 간구하는 실천적인 믿음을 말한다.

앞의 불의한 재판관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에게서 나타났던 것처럼, 이러한 곤경에 처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믿음을 말한다.

 

그리고 '찾아볼 수 있겠느냐'에 해당하는 '아라 휴레세이'(ara heuresei; will he find)에서, '아라'(ara)부정적 대답이 기대되는 추론적 질문을 의미하고, '휴레세이'(heuresei)의 원형 '휴리스코'(heurisko)의 본래 뜻은 '만나다', '마주치다', '우연히 발견하다'이다.

 

따라서 '아라 휴레세이'(ara heuresei)에는 세상에서 밤낮으로 부르짖는 믿음을 발견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뜻이 들어있다.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사람들의 마음은 완고하고 사악해져서, 하느님께서 당신이 간택한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조차도 거부하며, 그들의 마음에 의로움보다는 악(惡)이 가득차서 간구조차 하지 않을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하느님의 신실한 약속과 말씀을 의지하면서 믿음을 수호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루카 복음 17장에 나오는 노아와 롯의 시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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