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1월 18일[(녹)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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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11-18 | 조회수1,05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1월 18일 월요일 [(녹)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말씀의초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임금은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우고 율법서를 불태우게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리코의 눈먼 이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자, 그의 믿음을 보시고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신다. ◎제1독서◎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렸다.> 1,10-15.41-43.54-57.62-64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13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말을 받아들였다.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열닷샛날,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 향을 피웠다. 찢어 불태워 버렸다.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사형에 처하였다.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위에 내린 것이다. ◎화답송◎ 시편 119(118),53.61.134. 150.155.158(◎ 88 참조) 당신 법을 지키리이다. 그들은 당신 가르침을 저버렸나이다. ◎ 주님, 저를 살려 주소서. 당신 법을 지키리이다. 저는 당신 가르침을 잊지 않았나이다. ◎ 주님, 저를 살려 주소서. 당신 법을 지키리이다. 저는 당신 규정을 지키리이다. ◎ 주님, 저를 살려 주소서. 당신 법을 지키리이다. 사악한 박해자들이 다가왔나이다. ◎ 주님, 저를 살려 주소서. 당신 법을 지키리이다. 따르지 않았기에, 저들에게는 구원이 멀리 있나이다. ◎ 주님, 저를 살려 주소서. 당신 법을 지키리이다. 그 배신자들 보며 저는 역겨워하나이다. ◎ 주님, 저를 살려 주소서. 당신 법을 지키리이다. ◎복음환호송◎ 요한 8,12 참조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복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복음입니다. 18,35-43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다윗의 자손이시여,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해 주기를 바라느냐?”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영성체송◎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 ◎오늘의묵상◎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시리아 임금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억 속에 최악의 이방 지배자로 기억됩니다. 왜냐하면 유다교 자체를 멸절하려 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다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전에 자기 상을 세우며 성전을 더럽히기까지 하였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전에 세워진 그의 상을 두고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표현합니다.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스라엘의 많은 이들이 그를 따라나섰다는 데 있습니다. 그를 따라 우상을 섬기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따르지 않는 의인들도 많았습니다. 그중 많은 이들이 순교를 하였는데, 이것이 유다 독립 운동의 밑거름이 됩니다. 결국, 유다 땅은 마카베오로 말미암아 독립을 쟁취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의인들의 피를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 막바지에 소경을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 사람들과 소경의 태도가 매우 대조적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고 “나자렛 사람 예수” 라 부르지만, 소경은 그분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라고 고백하며 자비를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진정 깨달아 아는 사람은 눈먼 이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입을 막으려 하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결국 눈먼 이만이 참으로 눈을 뜨고 구원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눈을 지니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아뵙지 못하는 눈먼 이로 남습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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