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2 조회수2,030 추천수7 반대(0)

불가항력(不可抗力),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준비한다고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뉴욕으로 온 친구가 캐나다로 단풍 구경 간다고 했습니다. 숙소도 예약했고, 렌터카도 예약했고, 비행기도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미국면허증을 가져오지 않고, 한국 면허증을 가져왔습니다. 한국에 연락해서 미국면허증을 택배로 보냈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미국면허증을 받았습니다. 다시금 비행기 예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캐나다 전자 여행 허가(eTA)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법이 개정되었는데 모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단풍 구경은 포기하였습니다. 옆에서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속이 상하고, 자신을 탓했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덕분에 친구와 며칠 더 뉴욕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가을이 깊으면 겨울이 가까이 온다는 뜻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파 사람은 예수님과 부활 논쟁을 벌였습니다. 장기에 외통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수입니다. 장기에 질 수밖에 없는 수입니다. 사두가이파 사람은 부활이 있다면 유대의 율법 규정을 들어서 일곱 형제와 살아야 했던 여인의 남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예수님께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은 존재의 차원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소유의 차원은 중심이 입니다. 그러나 존재의 차원은 중심이 하느님입니다. 소유의 차원은 승자독식, 적자생존, 약육강식,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입니다. 존재의 차원은 믿음, 희망, 사랑의 세상입니다. 정결, 순명, 가난의 삶입니다.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뛰노는 세상입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더는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없는 세상입니다. 부활은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활은 인식과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존재의 삶을 산다면 이미 부활의 삶이 시작되는 겁니다.

 

가을이 깊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는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네. 도대체 내가 이 무슨 역경에 빠졌단 말인가? 가난한 이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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