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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1.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4 조회수1,60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11월 24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제1독서 2사무 5,1-3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제2독서 콜로 1,12-20

형제 여러분,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빕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복음 루카 23,35ㄴ-43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35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지난여름에도 여지없이

 태풍이 불었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가을까지도

태풍이 올라와서 농가에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태풍이 몰고 오는 많은 비도

 문제지만, 함께 불어오는

 거센 바람 역시 만만치가 않습니다.

지난가을에 올라온 태풍 링링과

 타파 때문에 제가 있는 성지에서도

꽤 피해가 있었습니다.

많은 나무가 잘려나가고 야외

벽면에 붙어 있던 ‘최후의 만찬’

부조가 바람에 떨어져 나가서

누가 다칠 뻔하기도 했습니다.
뉴스를 보면 간판이 떨어지고,

 담과 펜스가 넘어지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제주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담을 떠올려 보십시오.

지난가을 태풍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제주도이지만, 이 돌담이

넘어진 곳은 하나도 없었답니다.

 그냥 규칙적으로 쌓은 돌담 같은데

왜 그 강한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돌 사이에 틈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돌 사이를 일부러 메우지 않았는데

이 틈새로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에

 세찬 바람에도 돌담이 통째로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완벽한 사람보다는 부족한 듯

빈틈이 있는 사람에게 인간미와

매력을 더 느끼게 됩니다.
이 점을 떠올리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모습을 묵상하게 됩니다.

왜 완벽한 모습의 하느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전지전능하신 힘으로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향해 따끔한 채찍을

 휘두르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까요?
정치 권력을 장악해서 백성을

억누르는 이 세상의 임금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나약한 모습으로 죽음에 이르십니다.

이로써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세상의 눈으로 보면

패배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혁명을 일으키러 왔다가

십자가형을 당한 실패자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통해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낙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온 누리의 임금이심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인 오늘,

주님을 세상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영적인 눈으로

우리에게 큰 사랑으로 임금이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굳게 믿어야 합니다.

 낙원이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조지 엘리엇)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하느님 체험.

사막의 교부들이 대단함을

성지순례 때 사막 체험을 하고 나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

주거지역에서 멀리 떨어져서

철저하게 외로울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왜 이러한

사막이나 광야로 떠났을까요?

‘범죄의 기회를 줄이려는 것.’이라고

어떤 사막의 교부가 적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로써 하느님을

 기억하고, 지속해서 기도에 전념하게

되어 이 세상에서 가능한 천사의

생활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막의 교부들 글을 보면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묵상, 그 묵상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희생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종종 하느님 체험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분을 만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사막으로 떠나야 합니다.

단순히 중동지역의 사막으로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의

기회를 줄일 수 있는 곳,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잠시 끊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런 노력도 없이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스도왕)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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