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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왕 대축일 복음 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4 조회수1,364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무렵에 일어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군사들이 두 죄수를 못 박는 상황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합니다. 저들이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용서를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타인의 죄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초월적인 기도를 하십니다.

 

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메시아, 구세주라고 하면서 왜 자신도 구하지도 못하느냐고 빈정대면서 말입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죄인 하나가 예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저는 이 모습에서 이런 걸 한번 생각해봅니다. 군사들이 빈정대는 것과 죄수가 빈정대는 것에 차이가 좀 난다는 것입니다. 왜 루카 복음사가는 동등한 행위를 놓고 다르게 표현을 했을까요?

 

저만의 독특한 상상을 해봤습니다. 군사들이 빈정대는 모습도 메시아를 몰라보는 일반인이라서도 그렇겠지만 오히려 군사를 등장시켜서 죄수가 예수님을 조롱했을 때는 이와는 다른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두 무리를 대조하면서 말입니다.

 

분명히 자세히 보면 죄수가 예수님을 조롱할 때는 모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조롱과 모욕은 이 상황에서 어찌 보면 오십보백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뭔가 더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죄로 따지면 군사는 그냥 경미한 죄이고, 죄수는 중한 죄 같다는 뉘앙스입니다.

 

군사는 죄인들을 못 박는 일이 응당 자기일이고 또 죄수들이 작다면 자기들 입장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덜 할 수 있는 상황이라 편할 수도 있을 거라 어쩌면 자기들 일이라고는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라 하면서도 내심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을 거라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예수님이 자신들에게는 귀찮은 존재라 생각돼서 하는 식의 빈정대는 것이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식의 모습으로 표현을 한 것 같은데 죄수가 조롱했을 때의 묘사는 모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두 상황을 극명하게 차이 나는 대조를 보여줍니다. 저는 이걸 이렇게 봅니다.

 

군사는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본분에 맞는 일이라는 겁니다. 근데 죄수는 같이 조롱을 했지만 자기는 그냥 평범한 일반 사람도 더군다나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는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지은 죄수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당시에 그런 말을 하는 죄수가 봤을 때는 십자가 형벌을 받으면 자신처럼 뭔가 극악한 죄를 지은 죄인이라 생각을 했을 테고 그런데 자신이 메시아라고 했다고 하니 이왕 죽는 마당에 엉뚱하게 세상을 저주하듯이 괜한 분풀이를 예수님을 향해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예외 없이 모든 이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죄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매달려 계신 것이 자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바로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이 무지몽매한 죄수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지 않았을까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결국 죄를 지은 죄인이 자기의 죄 때문에 대신 목숨을 내어 자신을 살려주시려는 구세주를 몰라보며 하는 행위를 모독이라고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한 것은 우리도 우리가 예수님을 모독해야만 모독하는 것이 아니고 저희의 죄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모른다는 게 바로 예수님을 모독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실이 합리적 추론으로 맞지 않을까 하는 사실은 마지막 내용이 뒷받침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강도입니다. 우강도는 자신이 먼저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받는 데에 대해서 구차하게 변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회개를 합니다. 자기의 죄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으셨음을 입으로 고백합니다.

 

물론 세상법으로는 죄를 지은 죄인이지만 어쩌면 영적으로는 예수님의 무죄를 비록 죄인의 입을 통하긴 하지만 간접적으로 선언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봤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하는 대목에서는 비록 죄인이지만 마치 이 죄수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만약 복음이 비유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약한 인간인지라 죄에 넘어지고 넘어지는 나약하고 부족한 죄인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언저리에는 보이지 않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이런 사람에게 마지막에 회개에 합당하고 그에 상응하는 이상으로 우리에게 넘치는 선물을 주신다는 겁니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또 회개하고 마지막에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겸손되이 청하게 되면 하느님께서 무한한 자비를 내려주실 것이라는 것을 전하는 메시지이지 않을까 하는 게 오늘 제가 묵상한 복음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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