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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성본능과 같은 아름다운 형제애를 느낀 순례길에서.......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6 조회수1,409 추천수2 반대(0) 신고

 

 

 

1123일 토요일 새벽 130분에 올해도 어김없이 전주 교구청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순교자의 압송로 길을 걷기 위해 모인 분들이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올해는 제가 참가하는 게 불투명했습니다. 참가하는 그날까지도 불투명했습니다. 아무튼 금요일 일을 마치고 마산에서 전주로 향했습니다.

 

올해는 열차로 가려고 했는데 파업관계로 어쩔 수 없이 자가로 갔습니다. 사실 가면서 거의 59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데 몸 컨디션도 좋지 않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낮에 도착해서 아는 자매님과 신부님과 점심을 먹고 찜질방에서 한참 휴식을 취하고 참가 시간이 되어서 교구청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올해와 비교를 해보면 좀 더 훨씬 나았던 것 같습니다.

 

올해는 완주를 하지 못했습니다. 출발지인 진산에서 고산 성당까지 대충 38킬로미터가 되는데 그 정도만 걸었습니다. 원래 참가를 망설였다가 가게 된 게 몇 가지 사실이 있었지만 300킬로미터의 유섬이 유배길과 작년에 진산길을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 보속한다는 심정으로 걸어서 올해도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해서 또 내일이 어머니 기일이라 기일에 맞춰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드릴 선물이었기에 물론 올해 몸 컨디션 상태로 봐서는 무리가 될 것 같았지만 올 여름에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하는 행진도 해서 그걸 믿고 거의 4개월 동안은 걷는 연습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번에 제가 중도에 그만두게 되어 사실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저와 대전에서 온 누나랑 두 사람만 전주교구 사람이 아닙니다. 진산에서 출발하고 처음 쉬는 장소에서 타 교구에서 왔다고 진행하는 형이 소개를 해줬습니다. 이번에 제가 도보를 하면서 묵상한 내용을 한번 공유하고자 합니다. 먼저 교구청에서 출발할 때 호남사연구소장님으로 계시는 신부님께서 강복을 주시기 위해 잠시 오셨습니다. 올해 같이 가실 건데 일본에 교황님께서 오시는 관계로 일본 가셔야 한다고 하셔서 몇 가지 주의와 당부를 하고 강복을 주시면서 모두 다 완주하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에 묵상 미션을 하나 주셨습니다.

 

걸으면서 당연히 순교자가 가신 길과 삶을 묵상해야겠지만 효에 대해 묵상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순간 이 말씀을 하실 때 육적인 부모님인가 했는데 바로 하느님과 저희에 대해서 우리가 하느님께 하는 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강복을 끝으로 출발지인 진산으로 향했습니다. 진산에서 작년에 새벽 3시에 출발했는데 올해는 15분쯤에 출발했습니다. 출발하면서 기념사진을 하나 찍었습니다. 진산초등학교 앞인데 여기가 예전에 순교자가 출발하였던 곳입니다. 헤드랜턴을 켜고 앞을 밝히면서 멋진 출발을 했습니다.

 

앞서 제가 이번에 참가한 계기를 말씀드렸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올 여름에도 한번 뵈었지만 작년에 유섬이 길에서 만나 인연이 된 전주교구 자매님도 한번 뵙고 싶어서도 참가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걸으면서 많은 것을 묵상을 했지만 사실 이 자매님한테서 받은 또 하나의 감동이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출발하고 30분 정도는 떨어져서 각자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같이 나란히 걸었습니다. , 순서가 좀 바뀌었습니다. 교구청 앞에서 버스 출발을 기다리면서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자매님 차가 교구청 입구에서 잠시 멈춰섰습니다. 아마 저를 잠시 보신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참석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명확하게 하지 않았거든요. 딱 보니 자매님 차였습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주차하시고 내려오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악수를 건네셨습니다. 혹시 이번에 부담이 될까 봐 참가 며칠 전에 연락을 하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차에 함께 탑승했습니다. 출발 후 30분쯤에 같이 나란히 가면서 제가 여름에 뵙고 거의 4개월 만에 뵈어서 그냥 말없이 걷는 게 좀 서먹서먹해서 말씀을 먼저 드렸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매님도 랜턴을 가지고 오셨는데 약간 밝기가 밝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같이 앞길을 비추고 가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손에는 묵주를 쥐고 계신 걸 봐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그만했습니다. 기도를 하시는 데 방해가 될까 봐서 그랬습니다. 어느 정도는 계속 걸으면서 랜턴을 비춰드렸는데 약간 한 보 반 정도 뒤에 오셨습니다. 이 차이를 두고 어느 정도 계속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자매님께서 저랑 같이 나란히 걸으셨습니다.

 

저는 이때 하나 생각한 게 있습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 제가 추측했을 땐 자매님께서 제 마음을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자매님께서는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하시며 걸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자매님과 조금 차이를 두고 걸으니까 제가 랜턴을 비추는 방향이 자매님 방향으로도 어느 정도 비춰야 하니 제가 랜턴 향하는 방향이 좀 어렵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아차리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매님께서 저랑 속도를 맞춰서 같이 나란히 걸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봤을 땐 그랬습니다. 저는 이때 생각했습니다.

 

걸으면서 서로 정말 상대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이심전심으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봤을 땐 틀림없이 그 자매님은 그랬을 것입니다. 작년에 유섬이 길을 1011일을 같이 걸으면서 여러 면을 봤습니다. 참 현명하시고 뭔가 센스가 있으십니다. 작년에도 처음 쉬었던 곳에서 올해도 잠시 쉬면서 간식을 내놓으시고 감을 말린 것을 주시더군요. 제가 각별히 아끼는 분이 주시니 그 맛은 더 감칠났습니다. 원래 출발하기 전에 이번에 자매님께서는 사전에 저에게 정보를 주셨습니다.

 

올해는 고산성당까지만 가고 오후에 결혼식이 있어서 나중에 전동성당으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작년에 싱거랭이라는 곳에서 원래 문헌상에는 그곳에서 조반을 먹었다고 해서 그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그곳에 무슨 사정이 있어서 고산성당 주변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습니다. 전날 저녁을 먹고 물론 조금씩 쉬면서 중간중간에 서로 간식을 나누어서 허기를 채웠지만 고산성당 도착 예정 시간이 1130분 정도되었습니다.

 

근데 어느 정도 걷다가 발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무릎이 조금씩 좋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매님 한분이 제가 걷는 모습이 좀 아파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조금 걱정스러운 말씀을 하셔서 제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조금은 아프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존심이라고까지는 좀 그렇지만 아파도 걷는 데까지는 최대한 아픈 모습을 겉으로 보여드리지 않으며 걸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 걷는데 자매님께서 아파도 잘 걷네요 하시더군요. , 네 하고 걸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파도 참고 걸었습니다. 이때 그 당시 순교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걸었던 면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순교자의 고통도 생각했지만 무엇보다도 처절한 반성을 했습니다. 두 번째 중요한 묵상이었습니다. 바로 신앙생활을 할 때 요행을 바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상태가 중요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우리가 어떤 관문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그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는 그에 합당한 조건이 성취되고 자격이 완비됐을 때 그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제가 작년에 유섬이길 300킬로 조금 넘는 유배길과 또 진산 압송로 길, 올해 프로치운쿨라 도보 행진 이런 경험이 있어서 그래도 힘들지만 걸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런 안일한 마음을 가진 거에 대해 철저한 반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자신이 한 거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알았습니다. 반드시 준비를 철저히 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반드시 나중에 우리가 가야 할 천국본향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건 몰라도 자비하시니 쉽게 천국으로 갈 수 있게 하시겠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그러면 진정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에 가서 살 수 있도록 지상에 사는 동안 일어나는 수많은 십자가를 지는 훈련을 해야만이 진정으로 하느님 나라에 갔을 때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게 하시려고 하는 하느님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최대한 진통을 참으며 발바닥에도 뭔가 문제가 생겼지만 어떻게 고산성당까지 갔습니다. 400미터 정도 남겨두고 멀리서 성당 십자가가 보이는 것입니다. 안도의 한 숨이 나왔습니다. 십자가지만 일반 개신교와는 조금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전주교구는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제가 언제 한번 보니 전주교구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 건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400미터는 정말 4킬로미터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기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작년에는 성당에서 두부김치로 점심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까지 가는 거리가 또 왜 이리도 뭔지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점심을 먹고 비상약을 먹고 어떻게 해서든지 전동성당까지 가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식사를 하고 잠시 쉬면서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년에 완주한 형제도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중간에 가겠다고 해서 그만 갔습니다. 저도 이때 도저히 안 되겠다고 싶어 오늘은 여기서 그만 걸어야겠다고 말씀드려서 다른 자매님 한 분과 같이 전주로 가려고 했습니다. 식당에서 나왔는데 여기서 제가 정말 엄청 감동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올 때 원래 처음에 같이 걸었던 자매님이 발바닥에 물집이 안 잡혔냐고 중간에 물으셔서 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아직은 걸을 수가 있다고 말씀을 드려서 중간에 식사를 하시고 나서 제가 보지를 못했는데 막간을 이용해 약국을 다녀오신 것입니다. 일반 밴드가 아니고 이런 것에 응급처치하는 밴드가 있습니다. 작년에 제가 봤습니다.

 

자매님은 제가 끝까지 걸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고 응급처치를 해 주시려는 마음에 약국에 가신 것입니다. 식당으로 가면서 중간에 약국이 있는 걸 봤는 데 조금 거리가 떨어져있었습니다. 근데 그곳까지 가신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이때 눈물겹게 감동했습니다. 그 자매님의 마음에 말입니다.

 

작년에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 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도 저에게 잘해주시니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후에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춰서 전동성당으로 갔습니다. 거의 작년과 비슷한 시간에 도착을 했습니다. 저는 완주를 한 분에게 박수로써 환영을 했습니다. 두 분 정도는 그래도 힘들었지만 쌩쌩하게 보였고 나머지 분들은 기진맥진해서 들어오셨습니다.

 

저도 작년에 해봐서 알지만 정말 하루에 59킬로미터를 걷는다는 게 그것도 거의 다 아스팔트 길이라 다리에 충격이 많이 가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길입니다. 신부님께서 가시기 전에 미리 전동성당 보좌신부님께 강복을 부탁드리고 가셔서 완주는 하지 않았지만 강복을 받고 뒤풀이 장소로 가서 식사를 하며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예식이 요즘에는 늦게 하는 곳이 있나봅니다. 식이 늦게 끝나서 그러셨는지 자매님께서 식당으로 오셨습니다.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저와는 완전히 정반대에 앉아계셨습니다. 저는 식사를 하면서 좀 떨어져있어도 식사 중에 나누시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복장은 낮에 복장과는 달랐습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저는 물끄러미 자매님을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저랑은 연배가 좀 나시는 분이지만 걸으면서 자매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이 제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어두운 도로에서 차가 올 때 반사적으로 저의 팔을 잡으면서 안쪽으로 당겨주시는 모습에서 어쩌면 이모님 같은 연배이지만 저는 일종의 모성본능이라고까지는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전 그때 그 상황이 어쩌면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성 특유의 모성본능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 참 자매님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가을에 단풍이 물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물들여가는 모습처럼 사시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제가 오후에 문자를 보내드렸습니다. 이번에 또 자매님한테서 감동을 받고 왔다고 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저 때문에 약국까지 가셔서 밴드를 사오신 그 마음에 감동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유섬이 길을 걸었을 때 역시 그때 자매님에 대해 받은 인상이 확실했다는 것과 방금 전에 말씀드린 표현처럼 인생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가시는 것 같다고 하는 내용을 보내드렸습니다. 문자를 보내드린 후에 답장이 왔습니다.

 

고맙다고 하시면서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제 마음 안에 넣어주신 눈이 그렇게 보는 거라고 하시면서 겸양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오히려 저를 더 돋보이게 하시는 마음까지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표현하는 것보다 그냥 이분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더 낫겠다 싶었습니다. 마음은 아니예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지나친 겸손은 또 하나 겸손을 가장한 위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제든 훌쩍 떠나고 싶을 땐 전주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겠다고 하셔서 정말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식당에서 나와 자매님은 차가 교구청에 주차되어 있어서 전동성당까지만 같이 동행을 하고 저는 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전주에 하루 있다가 주일 미사를 전동성당에서 참례하고 내려가겠다고 말씀드리고 헤어졌습니다. 헤어지면서 악수를 청했습니다. 또 한번 제 마음에 뭔가 여운을 남기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헤어지면 누구나 작별 인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보통 보면 베드로씨 잘 내려가라고 이렇게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근데 자매님께서는 이렇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 언제 또 보는 거죠라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제가 순간 멈칫했습니다. 저는 또 오겠습니다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냥 잘 내려가라고 하는 인사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랑과 정이 묻어나는 인사였습니다.

 

저는 이 짧은 인사말에도 이분의 정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저희 본당에 계신 어떤 형제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말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사랑도 있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대신 전달 받을 수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에 이분과 함께 걸으면서 어느 구간에서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올 여름에 잠시 지나가는 말씀을 하셨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남편되시는 분과 산티아고를 다시 걸으실 건데 같이 갈 수가 있다면 같이 걷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생각나서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이런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정말 이분과 함께 800킬로나 되는 대장정의 길을 걸으면서 많은 아름다운 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걷게 된다면 이 세상에 살면서 가지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분과 이번에 걸으면서 한 가지 이색적인 묵상을 하게 된 게 있습니다. 문득 들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오버랩되어 생각이 났습니다.

 

자기도 교회 신자들로부터 모두가 자기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과 함께 든 생각은 이 자매님처럼 저를 잘 챙겨주시고 또 관심을 가져다주시고 애정을 보여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냥 이유 없이도 저를 싫어하는 교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만 받으려고 하면 그것도 교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하느님의 외아들로 오셔서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신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배척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바로 정답이 나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은 정말 교만이 하늘을 찌를 수도 있기에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런 자매님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시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만을 경계하라는 뜻에서 때로는 마음에 맞지 않는 분들과도 관계를 맺으시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름 진지하게 묵상을 했습니다. 이 또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것도 또 다른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모든 보편적인 상황에서 다른 분들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제가 오늘 적은 후기는 사실 이분과 관련된 게 주된 핵심입니다. 이분을 통해서 오는 사랑이 하느님의 간접적인 사랑도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예전에 책에서 본 사실입니다.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를 둔 내용입니다.

 

원래 우리가 아는 모성본능 있지 않습니까. 모성본능은 참 이상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생명체만이 가지는 본능입니다. 그 본능은 그냥 우리가 막연하게 추측을 하면 그냥 여성에서 여성으로 어떤 유전자가 전해질 것 같지 않습니까. 근데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모성본능은 재미있게도 아버지의 유전자를 통해 모성본능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저는 예전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신앙에 한번 접목해봤습니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사람에게만 국한해서 생각을 해 본다면 꼭 이런 모성본능이 혈연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걸로 보지 않고 제가 말씀드린 자매님의 경우처럼 더 넓게 광의적으로 해석을 했을 때 하나의 형제애가 더 확대돼서 나온 것도 포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결국은 그 속에 바로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의 부성애가 가지고 있는 부성의 사랑이 하나의 사람을 통해서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모성본능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표현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결국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름다우면 그 사랑이 마치 모성본능과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제가 이번에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압송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생각을 그냥 두서없이 전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뭔가 제가 느꼈던 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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