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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1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7 조회수2,03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다니 5,1-6,13-14.16-17.23-28

그 무렵 1 벨사차르 임금이

천 명에 이르는 자기 대신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벌이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2 술기운이 퍼지자 벨사차르는

자기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물들을 내오라고 분부하였다.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시려는 것이었다.
3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곧 하느님의 집에서

가져온 금 기물들을 내오자,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4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하였다.

5 그런데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촛대 앞 왕궁

석고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임금은 글자를 쓰는 손을 보고 있었다.
6 그러다가 임금은 얼굴빛이 달라졌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이다. 허리의 뼈마디들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13 다니엘이 임금 앞으로 불려 왔다.

 임금이 다니엘에게 물었다.
“그대가 바로 나의 부왕께서

유다에서 데려온 유배자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인가?

14 나는 그대가 신들의 영을

지녔을뿐더러, 형안과 통찰력과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는 말을 들었다.
16 또 나는 그대가 뜻풀이를

 잘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대가 저 글자를 읽고

그 뜻을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면,

그대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고

이 나라에서 셋째 가는 통치자로 삼겠다.”
17 그러자 다니엘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선물을 거두시고 임금님의 상도

 다른 이에게나 내리십시오.

그래도 저는 저 글자를 임금님께

읽어 드리고 그 뜻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23 하늘의 주님을 거슬러

자신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주

님의 집에 있던 기물들을 임금님

앞으로 가져오게 하시어,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찬양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시며 임금님의 모든 길을 쥐고 계신

 하느님을 찬송하지 않으셨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손을 보내셔서

저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25 그렇게 쓰인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
26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27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28 ‘프레스’는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복음 루카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보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무엇인지가 나옵니다.

그 단 하나의 이유는 ‘너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고 굳이 말한다면

그냥 ‘너니까….’라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늘 많은 이유를 찾습니다.

특히 사랑하는데에도 얼마나 많은

이유를 붙이는지 모릅니다.

내게 잘해줬으니까, 지난번 도움을

줬으니까……. 이러한 이유가 있어야지만

과연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내게 손해를 끼치거나

 별 도움이 안 된다면 싶으면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사랑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절대로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만남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쁘고 좋습니까?

만약 시간 관리가 철저한 합리적인

사람이 이 모습을 본다면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면서 한숨을 내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여기에는 합리적인 기준이 들어갑니다.

내게 소홀히 했던 것들, 내게 아픔과

 상처를 줬던 것들을 내세워서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갑니다.
주님의 사랑은 세상눈으로 볼 때는

절대로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봉헌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비합리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합리적인 사랑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비합리적인

사랑의 길을 힘들어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해의 위험을 겪기도 합니다.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들까지도 죽이려

하고 미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큰 약속을 해 주십니다.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사람의 머리카락 하나도 가벼이

 보시지 않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사람을 가볍게

여기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우리

 영혼과 육신에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비합리적인 사랑을 이 세상 안에서

쁜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의 첫 번째 계명은

 먼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희생은 사랑의

고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완벽한 삶.

‘완벽의 어원’에 대해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흔히 완전무결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완전할 완(完),

구슬 벽(璧) 자를 쓰는데,

귀한 구슬을 끝까지 무사히

지킨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결국, 완벽하다는 것은 끝까지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 삶에 빗대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삶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삶도 아닙니다.

나의 삶을 나답게 지켜나가는 것,

우리 가족을 지키는 것,

이웃을 지키는 것 모두 완벽한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를 지키셨습니다.
가장 완벽한 삶입니다. 우리도

이 완벽한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바쳐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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