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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1.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29 조회수1,77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11월 29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제1독서 다니 7,2ㄴ-14

나 다니엘이 2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저었다.

3 그러자 서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4 첫 번째 것은 사자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것은 날개가 뽑히더니 땅에서

들어 올려져 사람처럼 두 발로

일으켜 세워진 다음, 그것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졌다.
5 그리고 다른 두 번째 짐승은

곰처럼 생겼다. 한쪽으로만 일으켜져

있던 이 짐승은 입속 이빨 사이에

갈비 세 개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일어나 고기를 많이 먹어라.”
6 그 뒤에 내가 다시 보니 표범처럼

생긴 또 다른 짐승이 나왔다.

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가 네 개

 달려 있고 머리도 네 개였는데,

그것에게 통치권이 주어졌다.
7 그 뒤에 내가 계속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이 나왔다.

커다란 쇠 이빨을 가진 그 짐승은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았다.

그것은 또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게

생겼으며 뿔을 열 개나 달고 있었다.
8 내가 그 뿔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자그마한

뿔이 올라왔다. 그리고 먼저 나온

뿔 가운데에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갔다. 그 자그마한 뿔은

사람의 눈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1 그 뒤에 그 뿔이 떠들어 대는

거만한 말소리 때문에 나는

그쪽을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 짐승이 살해되고 몸은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졌다.
12 그리고 나머지 짐승들은

통치권을 빼앗겼으나 생명은

얼마 동안 연장되었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복음 루카 21,29-3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부로 강의를 하러 가면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강의할

용을 점검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지방으로 강의 갔는데,

 근처에 들어갈 카페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시간은 남아 있고 그렇다고

 특별히 갈 곳이 없어서 고민하던 중에,

근처에 공원을 발견했습니다.

이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강의할

내용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바로 제 앞에서 마음이 훈훈해지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특별한 장면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는

평범한 장면이었으니까요.
아이는 자전거 안장에 앉아있었고,

아버지는 뒤에서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잔뜩 긴장하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던 아이는 점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순간에 아버지는 잡고 있던

자전거에 살짝 손을 뗍니다.

아이는 넘어지지 않고 자기 힘으로

쭉쭉 앞으로 갑니다.
제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를

떠올려 보면 자전거 안장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커다란

공포였습니다. 자전거 안장 위가

마치 높은 빌딩 위에 올라간 것처럼

 높게 느껴졌고, 그래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은

생각에 두려워서 긴장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하게 만들지요. 하지만

이 두려움을 물리쳤을 때,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그 아이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바로 뒤에서 잡아주던 아버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안심하고 페달을

 밟을 수 있었고 이 믿음이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특히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통해 가장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말씀은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믿음을 두고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면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을

통해 세상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믿음을 두기보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믿음을 두면

 늘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집니다.

세상의 것들은 진짜 믿음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대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어디에 믿음을 두느냐에 따라서

나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서 벗어나,

기쁘고 행복하게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르누아르)

진짜 우정을 주님과 함께...

저의 SNS 친구는

 3만 명이 훨씬 넘습니다.

적지 않은 숫자의 친구가

인터넷이라는 공간 안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필요로

맺어진 관계일 뿐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거의 모르지만 단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물론 이 안에서 우정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익명성을

보장하기에 가짜 우정,

가식적인 우정이 더 많습니다.
진짜 우정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성경의 황금률에서

제시하듯, ‘남이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관계로

다가오십니다. 어쩌면 이를 뛰어넘어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해 주기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해 주시는

분으로 다가오십니다.
주님과 진짜 우정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커다란

힘을 얻고, 우리가 몸담은

이 세상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며칠 뒤면 대림초에 불을 켜집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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